매일신문

인정받기 보다 욕 먹어요…영남대 박홍규 교수

박홍규(56·영남대 교양학부 교수)는 없는 게 많은 사람이다. 오가는 곳은 집과 연구실, 강단이 전부이고 딱히 즐기는 모임도 없다. 골프? 당연히 안 친다. 그 흔한 휴대폰도 없고, 자가용은 커녕 운전면허도 없다. 신용카드를 쓸 줄도 모르고 면도도 목욕도 잘 안한다. 그런데 그는 가진 것도 많은 사람이다. 다리품을 덜어주는 자전거가 있고, 작은 마당이 있는 집과 43종의 작물이 자란다는 600평의 밭이 있다. 10년 동안 인근 야산에서 긁어온 부엽토로 일군 밭이다. 그의 유일한 단백질 공급원인 닭도 7마리나 된다. 저서가 족히 수십권은 넘는데 그 중 상당수는 인세도, 원고료도 받지 않고 넘겨 준 책들이다. 14일 오후 영남대 교양학부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지난 가을 그는 28년 간 몸 담았던 법과대에서 교양학부로 자리를 옮겼다. 인터뷰는 그의 연구실과 경북 경산시 압량면 당음리 집을 거치며 3시간 넘게 진행됐다. 냉소적이고 차가울 것이라는 기자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수염을 쓱쓱 만지며 이따금 흐흐하고 웃는 모습이 영락없는 동네 아저씨다. 그의 삶의 원칙은 단순했다. "나는 이런 삶이 편하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뿐이다." 권위주의에 저항하고 획일화를 거부하는 그의 삶이 왜 그저 '삐딱하고 특이한 사람'으로 치환되는지 곱씹어 볼 일이다.

◆모두가 자가용을 타고 아파트에 살 필요는 없다

-왜 남들과 다르게 사는 겁니까?

"제가 사는 방식이 제게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휴대폰이나 자동차, 신용카드 없이 사는게 불편하지 않아요. 연구실 아니면 집에 있으니까 휴대폰이 없어도 연락에 불편한 게 없어요. 도시락을 싸는 것도 식당 밥이 입맛에 맞지 않기 때문이에요. 간단합니다. 매일 면도하는 것도 귀찮고, 매일 샤워를 할만큼 별나게 목욕을 하는 버릇도 없습니다."

-남들과 다르게 사는게 피곤하지 않습니까?

"교수가 전공 논문도 열심히 쓰고 연구 프로젝트도 따고 해야 되는데 지금까지 제가 해온 번역이나 저술 활동은 평가를 받지도 못 하죠. 면도만 해도 그렇습니다. 수염을 기른 게 10년 정도 됐는데 눈총이 보통이 아니죠. 어떤 사람은 일본어로 말을 걸기도 하고. 저는 한국사회가 아직도 획일적인 사회라고 보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모험을 하려고 합니다. 면도를 하든, 안 하든 인정하는 여유가 있는 사회, 다양화된 사회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시골 생활이 불편한 점은 없으신가요?

"불편하죠. 돈도 많이 듭니다. TV도 위성방송밖에 안 되고, 신문도 잘 안 들어옵니다. 교통도 불편하죠. 도시가스도 안 되고 보안 문제도 있어요. 농사도 유기농과 비슷하게 하려니 수확이 적어요. 저희 부부 근근이 먹고 주변에 조금 나눠주는 정도죠. 사실 아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제가 농부처럼 처신한다는 겁니다. 아침저녁으로 1시간 정도 일하면서 마치 농사를 짓는 사람처럼 얘기한다고. 흐흐."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은가봐요.

"제가 별로 사교적이질 못 해요. 특히 10년 전 시골로 들어온 후로는 동창회나 어떤 모임도 안 하고 있고, 학기 중에는 회식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해도 많이 받습니다. 더구나 대구처럼 학연, 지연이 중요한 네트워크인 사회에서 10년 이상을 스스로 왕따시키고 있으니 욕도 많이 먹죠."

-하루 일과가 단순하시겠어요?

"오후 6, 7시쯤 해거름 되면 밭에 들렸다가 저녁먹고 책을 좀 보다가 오후 8, 9시 되면 잡니다. 오전 3, 4시쯤이면 일어나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고 6시쯤이면 밭에 물도 좀 뿌리고 학교에 오죠. 연구실에만 있습니다. 1주일에 2번씩 서울에 강연을 다니는 정도고. 저는 세상이 욕망을 줄여야 된다고 생각해요. 너도 나도 대통령되고 국회의원 되려하니 세상이 평화롭겠어요? 땅도, 자연도, 자원도 한정돼 있는데 우리 사회는 끝없이 욕망과 물욕을 키우기만 해요."

◆제대로 된 교양 교육이 필요하다

-28년 간 법과대에서 노동법을 가르치다가 교양학부로 오시게 됐는데요.

"내년 3월부터 로스쿨이 시작이 되는데요. 저는 로스쿨을 반대했습니다. 사법시험 위주의 암기식 법학 교육이 정상화되지 않고 '고시 실업자'라는 제도적인 모순을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로스쿨로 전환하는 데 회의적이었습니다. 또 로스쿨 졸업때까지 대략 2억~3억원의 학비가 드는데 그걸 부담할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로스쿨이 되면 노동법은 더욱 소홀해질 수밖에 없어요. 그럼 이 참에 대학의 교양 교육을 제대로 해보자 싶어 학칙까지 바꿔가면서 교양학부 전임교수로 왔습니다."

-두 학기째 교양학부 교수로 수업을 해보시니 어떠세요?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많아요. 연구실도 임시로 쓰고 있고, 학부 학생이나 석·박사 과정도 없죠. 교수의 업적이나 교육 평가에도 아주 불리하죠. 그래도 즐겁고 잘 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법과 예술' 과목을 가르치고 있는데 문학, 음악, 미술 등 예술에서 드러나는 여러 법적인 현상의 표현을 가르칩니다. 사실 대학의 교양 교육이 파행적으로 이뤄져왔어요. 특정 전공의 개론 정도 수업을 만들어서 석·박사 과정 학생들이나 시간 강사에게 맡겨버리고. 저는 교양 교육을 좀더 학제적이고 폭넓은 기초교육으로 만들고 싶어요."

-조지 오웰, 빈센트 반 고호, 카뮈, 베토벤, 간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책들을 쓰셨는데요.

"저 나름대로는 일관된 겁니다. 남을 위해 살려고 노력했고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한 이들의 삶과 가르침을 얘기하는 거죠.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담론이 제 마음에 들지 않거나 공통 지식으로 소개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을 주제로 합니다. 가령 고흐에 대해 그저 귀를 자른 미친 화가라는 인식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고흐는 노동자의 친구, 노동자의 화가거든요. 베토벤도 보통 사람들을 위해 작곡을 했어요."

◆권위와 권력을 거부한다

-이 시대에 아나키즘을 얘기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저는 우리 사회 전반이 대단히 권위주의적인 사회라고 생각해요. 가장 집약적인 상징이 국가와 독점자본이겠죠. 저는 아나키즘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보진 않습니다. 하지만 권위와 권력, 국가와 힘에서 벗어나 개인이 자유롭게 자치적으로 움직이는 사회를 강하게 얘기하는 이념이 아나키즘입니다."

-우리 사회의 이상적인 형태는 무엇이라고 보세요?

"개인이 좀 더 욕망을 줄이고 자신에게 충실한 상태, 서로의 자유와 평등을 인정하는 개인을 전제로 필요한 범위 내에서 유동적이고 느슨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게 옳다고 봅니다. 고정되거나 항구적인 조직이 아니라 욕구나 필요에 따라 생기고 없어지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죠. 품위와 존엄성을 가진 개인이 자기 결정권을 가질수 있는 공동체를 자연과 조화로운 상태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사회가 이상적이라고 봅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사회라고 보십니까?

"실질적인 민주주의 사회는 아니라고 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기본적으로 갖춰줘야할 요소로 지방자치, 결사자치, 재판자치 세 가지를 드는데요. 지역 단위의 직접 민주주의인 지방 자치는 지방 욕망의 분출구라고 할만큼 아주 왜곡돼 있습니다. 결사 자치도 촛불집회나 집시법 문제를 통해 볼 때 굉장히 우스꽝스러운 형태가 됐죠. 재판 자치도 이제 막 배심원 재판이 태동하고 있지만,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필요성을 인식한 것이 아니라 갑자기 뚝 떨어진 제도가 돼버렸어요."

◆천박해지는 자신이 싫다

-요즘 가장 큰 고민이 뭡니까?

"강의를 하는데 어떤 학생들은 노골적으로 잡니다. 수업은 안 듣고 중간고사 공부를 하는 학생들도 있고, 남녀 커플들은 대놓고 사랑의 행위를 하고 있고요. 결국 제가 30분 일찍 수업을 마쳤어요. 예전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이죠. 성적도 요새는 상대평가에 맞춥니다. 그렇지 않으면 학생들이 수강신청을 안 한대요. 결국 저도 천박해지는거죠. 야, 이 걸 어떻게 해야 하나. 또 총장 선거를 둘러싼 복마전과 보직을 노린 술수들…. 거기서 느끼는 환멸. 그런 사람들과 구별하고 잘난 체하려는 제 심보와 대구 사회의 천박성. 그런 것과 싸우는게 참 피곤합니다. 아무리 싸워도 극복할 수 없다는데 자괴감도 느끼죠."

-만약 과거로 돌아가 새로 시작할 수 있다면 뭘 하고 싶으세요?

"당연히 그림이죠. 재주는 없지만 어릴 때부터 좋아했으니까요. 사실 제가 주기적으로 그림에 발작 비슷한 걸 일으킵니다. 10년 전에는 교수를 그만두고 미술학교를 다니려고 파리에 있는 미술학교 몇 군데를 찾아가기도 했어요. 그렇게 한번씩 심각하게 고민은 했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농담처럼 꼭 해보고 싶은게 선 보는 것과 바람을 피워보는 건데요. 아내에게 얘기를 하니까 '선을 보려면 이혼을 해야 되니 안 되고, 바람은 불법이긴 하지만 유부남이니 일단 자격은 된다'고 받아치더군요."

-지금 준비하는 책이 있습니까?

"플라톤에 대한 책을 쓰고 있어요. 플라톤이 서양 학문의 아버지라고 찬양되는데 문제가 있다고 보고 비판하는 책을 쓰고 있어요. 그 외에는 서양의 사상과 예술에 대한 사대주의적인 찬양들을 재검토하는 작업을 준비 중입니다."

-행복하십니까?

"그럼요. 하루하루가 즐겁고, 하는 일에도 보람이 있고요. 매일 아침 해뜨는 것을 볼 수 있고, 아주 즐겁게 개와 산책을 하고 농사를 짓고, 학교에 가서 하루종일 책을 읽고 글을 쓰니까요. 많지는 않지만 제가 쓰고 남는 정도의 월급을 받는 사람이고, 남을 보태줄 수 있는 여유가 있으니 행복하죠."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 박홍규는?=1952년 생. 영남대 법과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일본 오사카 시립대에서 노동법을 전공했고,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법학을 연구했다. 빼어난 노동법 전문가로 인정받았지만 정작 그가 각광받은 이유는 정치, 사회, 문화, 예술 등 전방위적인 지식과 왕성한 글쓰기 덕분이었다. 고흐, 베토벤, 조지 오웰, 세익스피어 등 예술가들을 다룬 평전들과 이반 일리히, 에드워드 사이드, 간디 등 한국 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잘못 알려진 이들에 대한 번역서 등 수십여권을 저술했다. 개인의 권리를 억압하는 정부의 권한을 줄일 것을 주장하는 아나키즘을 소개하기 위해 한국아나키즘학회를 맡기도 했다. 현재 영남대 교양학부 교수로 10년 전부터 경북 경산시 압량면 당음리에서 밭을 일구며 아내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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