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합창단

지난번에 오페라하우스는 건물보다는 오페라를 만드는 인적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말을 한 바 있다. 그 중 중요한 것은 오케스트라, 무용단, 그리고 합창단 등이라고도 강조하였다. 그 중에서도 오늘은 오페라하우스의 근간이며 오페라 제작에 비중 있는 역할을 하는 합창단에 대해 살펴본다.

유럽의 유수한 오페라하우스들은 자체 합창단을 두고 있다. 그들은 보통 남성과 여성이 거의 같은 수로 구성되며, 작은 곳은 남·여 10·10명 정도에서부터 많으면 30·30명까지 두기도 한다. 그러나 보통의 오페라하우스들은 그들이 흔히 공연하는 작품의 규모에 맞추어서 보통 20·20명 정도가 평균이다.

그들은 당연히 여성은 소프라노에서 알토까지 남성은 테너에서 베이스까지의 혼성 8부 정도가 가능한 시스템이 가동된다. 만일 특별히 규모가 큰 악곡이 있어서 더 이상의 인원이 필요하다면, 일시적으로 외부에서 충원하거나 다른 합창단의 도움을 받게 된다.

노래를 잘 부르면 솔리스트를 하고 합창단은 노래를 못하는 사람들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간혹 있다. 때로는 합창단원으로 몇 년을 노래하다가 잘부르면 그때 솔리스트로 발탁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까지도 보았다.

과거에 그런 사례들이 있기야 했겠지만 요즘 오페라하우스의 시스템으로는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다. 즉 합창단원은 처음부터 평생 동안 그 오페라 극장에서 합창단원으로 일하기 위한 사람들을 선발하는 것이 요즘의 일이다. 물론 선발 과정은 엄격한 오디션을 통하여 이루어지며 음대에서 전공한 사람들 중에서도 실력을 갖추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 즉 솔리스트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로서의 합창단원이 아니라 평생 동안 그 극장을 위해서 헌신할 예술가를 선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원자들도 꼭 솔리스트들보다도 노래를 못해서만이 아니라, 안정된 직장을 위해서 솔리스트의 길을 단념하고 합창단원이 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하자면 일단 정단원이 되면 평생 동안 그는 안정된 직장에서 편안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살 수 있는 것이다. 만일 부부 성악가가 모두 합창단원이 된다면 유럽에서는 상당히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특별히 실력이나 목소리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정년까지 직장이 보장되는데, 대부분 정년은 65세 정도다.

솔리스트들은 인기와 명예를 얻고 운이 좋으면 더 많은 부를 모으기도 하겠지만, 평생 비행기를 타야하고 호텔과 호텔을 전전하는 힘든 생활을 해야 한다. 오늘은 이 도시 내일은 저 극장을 돌아다니는 오페라 스타들의 생활은 과거의 유랑극단 단원을 연상시킬 정도다. 그들은 가정의 유지는 물론이고 자녀 교육 등 힘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또한 늘 도전하는 불안정한 생활을 해야 한다. 반면 합창단원이 되면 평생 그 도시에서 존경받는 시민으로서 생활할 수 있으며, 가정생활과 자녀교육 등에도 안정된 환경이 확보되는 셈이다. 그러므로 실력 있는 성악가들 중에서도 적지 않은 이들이 합창단의 길을 택한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 합창단원들의 연륜이 쌓여 그 오페라하우스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합창단원들이 너무나 젊은 학생이거나 아니면 갓 졸업한 단원들 일색이어서, 공연의 노련함이나 연주의 깊이를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좋은 오페라는 결코 한두 명의 유명 솔리스트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이다.

오페라 평론가·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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