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 고유가, 고물가…. 최악의 경제지표에 쓰러지는 서민들이 속출하고 있다. 대구지법에는 막판에 몰려 파산,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이들로 크게 붐비고 있으며 소액의 대출금조차 갚지 못해 압류당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덩달아 물품 압류에 나서는 집행관(종전 집달리)들의 발걸음도 바빠지고 있다. 법원을 통해 더 이상 내놓을 것이 없는 서민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살펴본다.
◆빨간 딱지의 공포=16일 오전 11시쯤 대구 수성구의 한 주택. 대구지법 집행관들이 굳게 닫힌 현관문을 두드렸다. 아무 대답이 없었다. 집행관들과 동행한 열쇠기능사가 강제로 문을 따려는 순간 집안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잠시 후 문이 열렸다. 50대의 한 남성은 갑자기 들이닥친 집행관들의 모습에 다소 놀란 표정을 짓다 이내 고개를 숙였다. 이 반갑지 않은 손님들이 왜 왔는지 짐작하는 눈치였다.
이내 그의 집에 있던 TV며 냉장고, 세탁기, 가구 등에 일명 '빨간 딱지'라 불리는 압류물표목이 붙었다. 이 남성은 한 카드회사에 670만원을 갚지 못해 이날 동산 압류 강제집행을 당했다. 그는 몸이 불편해 오랫동안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고, 돈 한푼 빌릴 데도 없어, 신용카드에 의존한 채 생활해오다 조금씩 빚이 쌓이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변변한 게 없었다. 집안에 남은 건 채무자의 손때 묻은 가전도구 몇가지뿐. 채무자들에게 '저승사자' 같은 집행관이지만 이럴 땐 착잡해진다. 한 집행관은 "남의 돈을 떼먹어서는 안 되지만, 당장 끼니도 해결 못할 절박한 사정 앞에서 법 집행을 해야 하니 마음이 아플 때가 많다"고 했다.
대구 남구의 한 옷 공장. 집행관들은 들어서자마자 "공장 내부의 집기를 압류합니다"라며 방문 목적을 알렸다. 40대 여성이 집행관들의 방문에 놀라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녀는 당황하며 "항고했는데 압류라니요?"라며 남편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다. 그러다 "말도 없이 갑자기 오면 어떡하냐"고 따졌다. 하지만 집행관들은 보통 채무자가 돈 되는 물건을 빼돌릴까봐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성은 사정을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사무실의 책상, 의자 등에 빨간 딱지가 붙었다. 오디오, 컴퓨터, 프린터 등 사무기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공장 경우 한 직원의 퇴직금 650만원을 주지 않고 미뤄오다 날벼락을 맞았다. 돌아서는 집행관들 뒤로 "안 주려는 게 아니고, 없어 못 준 건데 그것도 못 참느냐"는 아주머니의 푸념이 들려왔다.
◆부도난 서민경제=집행관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는 서민들의 속타는 사연은 많고도 많다.
가진 것 없어 입에 풀칠이라도 하겠다고 남에게 돈을 빌려 조그만 구멍가게를 열었다 망해 버린 김모(49)씨. 친척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보증을 섰다 그 책임을 지게 된 이모(58)씨. 막노동으로 하루하루 버티다 몸을 다쳐 일손을 놓게 되면서 빚이 쌓이게 된 김모(50)씨…. 그 과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점은 결국에는 혼자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 없을 정도로 '종착역'에 다다랐다는 것이다.
법원에는 요즘 하루 20명에서 많게는 50명까지 각종 사연을 갖고 압류를 신청하러 오는 채권자들로 북적이고 있다. 삶의 애환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목격하는 집행관들은 자꾸만 들려오는 어두운 경제전망 속에서 저항할 힘조차 잃은 서민들을 더 많이 만나지나 않을까 내심 걱정이 앞선다.
한 집행관은 "IMF 직후에는 하루 200건이 넘을 정도였지만 2004년부터 개인회생, 파산제도가 시행되고부터는 '일감'이 확 줄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 수치는 큰 의미가 없다. 압류 집행이 되는 곳 대부분은 개인회생이나 파산 조건조차 갖추지 못해 법의 구제를 받지 못하는 채무자가 타는 '막차'이기 때문이다.
대구지법의 개인파산 및 개인회생 신청건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사업실패나 생활고로 신용회복위원회의 문을 두드리는 서민들 역시 하루 30여명에 이를 정도로 서민들의 삶은 벼랑 끝을 향하고 있다. 바닥으로 향하는 경기 앞에서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서민들. 그들의 삶을 방어해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가.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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