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금융위기로 경제가 급속도로 침체되면서 가계와 자영업자, 기업 등이 살아남기 위해 '소비 다이어트'에 나섰다. 군살을 빼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처절한 다이어트다. 가정은 충동구매를 자제하면서 허리띠를 졸라맸고, 자영업자와 기업들은 '마른 수건도 다시 짜자'라는 심정으로 원가절감에 나서고 있다.
◆직장인 '줄여야 산다'=직장인 배모(35·대구시 북구 산격동)씨는 이번달부터 상여금이 절반으로 줄어들어 고민하다가 긴축재정에 들어갔다. 예전엔 매주 대형소매점서 물건을 구입했지만 지금은 한달에 한번 간다. 한달에 한번 가족과 함께 삼겹살집에서 외식할 땐 3만원 한도에서 해결한다. 밥을 미리 시키는 것도 그의 생존 전략. 피자를 살 땐 걸어서 왕복 10분 거리인 가게에 직접 가서 사온다. 30% 할인해주기 때문이다.
미혼인 직장인 김모(30·경산시 사정동)씨는 매달 아파트 구입 대출금 원금과 이자, 생활비, 펀드, 적금, 보험 등을 내면 남는 돈이 없다. 재테크로 주식에 1천200만원을 투자했지만 30%를 손해봤고 적립식 펀드에는 한달에 80만원을 넣지만 20% 손실을 당했다.
김씨는 소비성향을 바꿨다. 친구를 만나는 횟수를 줄였다. 예전엔 1주일에 한두번 보는 친구들도 한달에 한두번 볼까말까다. 술 먹는 횟수를 줄이기 위해서다. 예전 한달 술값은 5, 6번에 20만~30만원이었지만 지금은 6만~7만원으로 줄였다. 안주와 술값이 저렴한 곳을 이용하기 위해 동성로보다 대학가 주변을 주로 찾는다. 예전에 즐기던 인터넷 쇼핑도 줄였다.
경기침체와 물가 상승으로 가정마다 생존을 위한 '소비 다이어트'가 한창이다.
지역 백화점 등 유통업계에 따르면 최근 정상가 매장보다 이벤트 매장이나 행사장 위주로 고객이 몰리고 할인쿠폰 등을 꼼꼼히 챙기는 고객들이 증가하고 있다.
충동구매는 줄이고 미리 쇼핑계획을 세워오는 쇼핑객도 늘어났다.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이 구매까지 걸리는 시간은 부쩍 늘었다. 둘러보고 만져보고 물어보고 다른 상품과 비교해 꼼꼼히 따져보기 때문.
가격은 저렴한 반면 실속은 큰 리필 상품도 불경기의 알뜰 구매법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리필제품은 일반 용기제품보다 가격이 10~30% 정도 저렴해 찾는 고객이 부쩍 늘었다.
오래되거나 낡은 상품을 부분 수선을 통해 재활용하는 고객도 증가하고 있다.
동아백화점의 경우 하루에 3~5건 정도의 와이셔츠 수선 의뢰를 받고 있다. 구두의 경우 하루 20~30족을 수선해 지난해보다 20% 이상 증가했다. 여성속옷 수선도 하루에 4, 5건 이상 접수되고 있다.
◆유통업계 '매출 비상'=가계의 소비 감소는 유통업체들의 매출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홈플러스에 따르면 대구지역 5개점의 10월 셋째주 고객수는 24만3천374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 증가한 반면 1인당 평균 사용금액인 객단가는 지난해에 비해 3% 정도 감소했다. 상반기의 경우 지난해에 비해 소폭 상승한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사정은 백화점도 마찬가지. 지역 백화점의 가을세일 매출은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지난해에 비해 5% 안팎의 매출 신장세를 기록하는데 그쳐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대구지역 백화점과 대형소매점 판매액 증가율은 전국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8월 대구지역 백화점 및 대형소매점의 판매액은 2천91억9천400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1.2% 증가하는데 그쳤다.
신차 판매도 감소추세다. 완성차 5개 대구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대구지역 신차 판매대수는 3천443대로 지난해 같은 달(4천11대)에 비해 14.2% 감소했다.
◆외식업체 '생존 아이디어 찾아라'=대구의 대표적인 외식거리인 수성구 들안길에서 3년째 횟집을 경영하고 있는 김모(53)씨는 요즘 갈수록 매출이 감소해 고민이다. 3년 전만 해도 자정까지 영업했지만 요즘엔 밤 11시 정도면 영업을 마친다. 고객이 지난해에 비해 30% 감소했다. 장사는 안 되는데 원재료비는 갈수록 오른다. 그래서 인건비를 줄이기로 했다. 직원 5명에서 1명으로 '구조조정'했다. 대신 아내와 딸이 함께 일을 거든다. 가족끼리 일을 하면서 인건비를 낮출 수 있었다. 단체 예약이 있으면 아르바이트를 구한다.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 다가전주콩나물해장국 주인 이현국(50)씨는 이달들어 매출 증가를 기대했는데 되레 지난해에 비해 15~20% 감소했다. 이씨는 먼저 종업원을 4명에서 3명으로 줄였다. 식자재에 많이 쓰이는 재료는 대량구매를 통해 값싸게 구입하면서 원가를 낮췄다. 지난 8월 경북 영양에 가서 고추 600~700kg을 직접 구입했다. 목돈이 부담되지만 식자재 업체를 통해 구입할 때보다 비용을 30% 줄일 수 있었다.
◆기업 '마른 수건도 다시 짜자'=환율폭등, 원가상승으로 기업들도 원가절감에 비상이 걸렸다. 환율급등으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고 있지만 가격에 바로 반영하지 못해 채산성이 악화되고 있는 것.
공구유통업체인 책임테크툴은 환율이 급등함에 따라 수입 주문량을 최대한 줄여 재고를 최소화한다. 또 대금 송금 전 반드시 환율을 확인한다. 공구 수입비중이 20~30%에 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절삭공구를 생산하는 한국OSG는 최근 직원들을 대상으로 원가절감 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형광등 스위치를 전면 교체하는 작업을 했다. 예전엔 전등 스위치 하나가 수십개의 형광등을 한꺼번에 끄는 구조였지만 지금은 팀이나 라인별로 개폐가 가능하다. 현장에서는 공회전을 줄이고 기계 닦는 기름걸레를 더 아껴 사용한다. 이 업체 이한우 상무는 "기업이 투자비를 줄이면 생산성이 하락하기 때문에 사무용품 등에서 원가절감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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