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북간도(연변, 동만). 일본이 점령한 땅이다. 조선과 중국의 항일 전사들은 이곳에서 해방을 위한 유격활동을 펼쳤다. 이 소설은 민족과 해방, 이념과 사랑, 믿음과 불신에 관한 소설이다. 항일 유격대원들 사이에서 벌어진 '민생단 사건(간단히 말하자면 일제 앞잡이)'을 중심으로 '나는 누구이고 너는 누구인가? 그리고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또한 불신에서 비롯된 참극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세 남녀의 사랑은 이 소설의 주제가 아니다.
만철(철도회사) 용정지사의 측량기수인 김해연은 용정의 여학교 음악 선생 이정희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지적이고 아름다운 이정희는 사실은 조선청년공산당원이다. 그녀는 항일공산투쟁을 벌이고 있다.
김해연은 간도임시파견대의 중대장인 나카지마 다츠키 중위와 친하다. 이정희는 김해연을 통해 일본군 중위 나카지마 다츠키 중위를 만나고, 그를 통해 정보를 얻고자 했다. (김해연은 이정희와 단둘이 만나고 싶어했지만 이정희는 나카지마와 셋이서 만나기를 좋아했다.)
김해연은 이정희를 사랑했다. 그에게는 사랑이 전부였다. 이정희는 자신을 깊이 사랑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이정희는 자신이 사랑했던 김해연과 거리를 두고 마음에 없었던 남자들에게 몸을 던진다. 해방운동을 위해서였다.
어느 날 이정희가 변사체로 발견됐다. 죽기 전에 그녀는 김해연에게 편지 한 장을 남겼다. 연인을 잃은 김해연에게 남은 것은 편지 한 장과 숱한 의문뿐이었다. 연인의 죽음에 충격 받은 그는 실어증에 걸리기도 한다. 그는 오랜 시간을 주검처럼 누워지낸다.
주검처럼 누워 있는 김해연을 흔들어 깨운 사람은 여옥이었다. 김해연을 향한 그녀의 사랑은 애틋함 그 자체였다. 여옥은 이정희와 달리 이성보다 감성이 강한, 그리고 감성에 충실한 여자였다. 그녀 역시 해방운동에서 일정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정보자료 심부름이 그녀의 일이었지만 '사랑' 때문에 심부름을 게을리하기도 했다. 그만큼 김해연을 사랑했다. 김해연 역시 그런 여옥을 사랑했다. 진심으로.
어떤 면에서 이정희는 '이념'의 희생자였다. 그녀는 모두를 사랑했지만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다. 이 부분은 이 소설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요 주제와 통한다. 이정희가 희생자였다면 김해연도 희생자였다. 서로간 불신으로 총부리를 겨눴던 수많은 조선인들 모두 희생자였다. (작가는 그 희생이 유의미하다거나 무의미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단순한 입장유보가 아니라 누구도 규정할 수 없는 부분이다.)
아무튼 김해연은 이정희를 사랑했고, 여옥을 사랑했다. 이정희가 죽고 오랜 세월이 지나서가 아니라 일년도 지나지 않아 여옥을 사랑했다. 여옥을 사랑하면서도 이정희를 잊지는 못했다. 김해연은 소설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정희의 삶과 죽음을 좇는다. 그녀가 지었던 표정, 그녀가 건넸던 한마디 말을 곱씹는다. 10년이 지난 후에도 그는 이정희의 죽음을 파헤친다. 그 와중에도 또 다른 여자 여옥의 맑은 사랑에 온몸을 맡긴다. 그녀가 그리워 눈물짓기도 한다.
흔히 영화나 소설에서 남녀의 사랑은 불변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는 한 여자 혹은 한 남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한다. 때로는 연인을 좇아 달리는 여정이 드라마의 전부인 경우도 있다.
이 소설 '밤은 노래한다'는 물론 연애소설이 아니다. 이정희에 대한 사랑이 김해연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무엇일지라도 연애소설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김해연은 이정희도 사랑하고 여옥도 사랑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어쨌거나 간에 김해연이 이정희와 여옥을 진실로 사랑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한 사람을 사랑하면서도 또 다른 사람을 꼭 같은 크기로 사랑할 수 있을까. 그것은 변절이나 애정이 식었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적어도 소설이나 영화는 그런 식의 사랑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나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는 '동시에 두 사람을 진실로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낭만적이어야 할 사랑에 찬물을 끼얹는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두 여인을 향한 김해연의 마음은 정직하고 지고지순하다. 그는 진실로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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