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미대 휴학생, 불황속 '길카페' 사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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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인과 가족들이 사랑스런 대화를 나눌수 있는 아름다운 카페를 만들고 싶어요." 변은영(왼쪽)씨가 20일 밤 대구 수성못 체육공원입구 도로변에서 1천만원을 들여 자체 제작한 이동 커피숍을 방문한 손님에게 커피를 팔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밤 산책을 나온 시민들이 따뜻한 커피를 찾아 '가게' 앞에 북적인다. 대구 수성구 수성못 길가의 0.5t 라보 트럭 위에 차려진 1.6㎡(반평)짜리 미니 카페. 몸 하나 들어가면 딱 맞을 좁은 화물칸에서 카페 주인은 쉴 새 없이 커피머신을 돌렸다. 커피머신이 돌아가면 차 안에 전등도 깜빡인다. 소박하게 잘 꾸며진 카페 같다.

수성못 명물이 된 '이름없는 카페'의 변은영(21·여) 사장은 환한 미소로 손님들을 맞았다. 지난해 11월 이곳에서 개업했으니 벌써 1년이 다 됐다.

"커피머신, 발전기 설치부터 메뉴판, 실내 인테리어까지 다 제 손으로 했죠."

변 사장의 차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자작(自作) 노변 카페다. 트럭 옆에 걸린 '이름없는 카페'라는 간판도 솜씨를 발휘해 직접 만들었다. 지역 한 대학 미대를 다니다 휴학한 변씨는 '사장'이라는 이름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앳된 모습이다.

그는 2년 전 우연히 달서구의 한 공원에 갔다 1t트럭을 개조한 차(車)카페를 보고 창업을 결심했다. 그때부터 1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며 꼬박 모은 돈을 이 카페에 투자했다. 트럭 구입비 220만원, 커피제조기 300만원, 발전기180만원 등 딱 1천만원이 들었다. 2개월씩 6곳의 커피 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커피 제조법을 배웠다. 가게 성공은 결국 맛이라고 판단했다. "저는 손님들의 취향에 맞게 커피를 만들어 줘요. 그래서 손님들이 더욱 좋아하죠."

싼 가격도 손님들을 끄는데 한몫 했다. 커피전문점보다 훨씬 싸다. 종류도 1천원대에서 3천원까지 다양하다.

커피맛이 입소문을 타면서 어느 새 이름까지 얻었다. '수성못 커피프린세스 1호점'. "카페에 이름이 없어서야 되겠냐"며 한 단골 손님이 인기리에 방영됐던 TV 드라마를 본 따 붙여준 애칭이다.

수입도 그의 나이에 비해서는 과분할 정도라고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터를 잡기 위해 동촌 유원지, 월드컵 경기장을 돌아다녔지만 쫓겨난 적도 여러 번이었어요." 수성못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기서도 장사를 접어야 하나 고민도 했다. 특유의 싹싹함과 애교로 상인들의 마음을 녹였다. 이제는 어려운 일을 상의할 정도로 친해졌다.

"이름 없는 카페를 프랜차이즈하는 게 꿈이에요. 그때가 되면 학교로 돌아가서 다시 공부를 계속해야죠."

시민들이 하나 둘씩 수성못을 모두 떠나는 오전 1시 무렵. 변씨는 그제야 카페 앞 쓰레기통을 차에 싣는 것을 끝으로 가게 문을 닫았다.

"갈수록 취업은 어려워지고 경제도 어려워지고… '이태백', '엄지만(엄마지갑에서 만원만)'이 많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젊은 시절 조금만 고생한다 생각하면 길은 저절로 열리지 않겠어요?" 변 사장은 내일 아침일찍 커피 원두를 사러가야 한다며 씩씩하게 트럭에 올랐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사진=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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