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국민 혈세로 '은행 부자' 왜 도와줘야 하나요?"

정부 대외채무 지급보증·유동성 지원에 '도덕적 해이' 논란

이달 초 미국 의회가 뉴욕 월가에 7천억달러의 구제금융을 하자는 미국 정부의 법안을 부결했던 것은 미국민들의 금융 종사자들에 대한 반감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엄청난 소득을 올리다가 회사가 어려워졌으면 급여나 복리수준을 줄이는 자구노력을 먼저 해야 하는데도 아무런 취하지 않는 월가 고소득자들을 위해 경기침체로 고통받는 국민들이 낸 혈세를 지원하면 안된다는 여론이 팽배했었기 때문.

이와 비슷한 반감이 국내에서도 형성되고 있다. 정부가 은행의 대외채무에 대해 지급보증을 하고 달러 유동성을 지원키로 한 것에 대해 도덕적 해이 논란이 일고 있는 것.

은행들은 IMF 시대에 떠안은 구조조정 기업 주식을 매각해 막대한 수익을 남겼고, 직원들은 고임금 혜택을 누리면서 최고의 직장으로 자리잡았다.

현재 국내 거의 전 은행들은 특화된 업무 영역을 구축하기보다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부를 축적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 특정 시장이 활성화되는 기미를 보이면 이전투구식 경쟁을 벌이며 서로 고객 뺏기에 혈안이 되는 경우도 허다한 실정. 2003년 이후 한동안 주택시장이 달아오르자 주택담보대출에 대거 진출했다가 이후 경쟁적으로 중소기업 대출로 발길을 돌렸다. 어떤 위험이 있는지도 모른채 파생상품을 팔기에 바빴다.

그러다가 경기가 급속히 냉각되고 기업 사정이 어려워지자 기업 대출을 중단하면서 신용경색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물론 여기에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주요인으로 작용하지만 국내외를 떠나 금융 종사자들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있는 것이 사실.

여기다 다른 업종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급여가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지적도 많다. 재계 전문 사이트 재벌닷컴에 따르면 조사 대상 업종 가운데 증권사 직원이 작년 평균 7천640만 원을 받아 연봉이 가장 높았으며 은행원이 6천808만 원으로 2위를 차지하는 등 금융업 종사자의 연봉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섬유업종 직원의 연봉 2천964만 원에 비해서는 배를 넘는 수준이다.

한국은행 경우 연봉 1억원이 넘는 직원이 30%에 달한다는 국감 자료가 나왔고, 일부 시중은행 행장의 연봉은 20억원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임영호(자유선진당) 의원은 국회 재경위 국감에서 "은행들은 외환위기 이후 정부의 공적자금 덕분에 재무구조가 개선됐는데 막대한 예대마진(대출이자에서 예금이자를 뺀 것)을 통해 한해에 수 조원씩 이익을 내면서도 리스크 관리는 뒷전이었다"면서 "외환위기 이후 달라지지 않은 은행권의 이러한 경영 행태와 이를 내버려둔 당국의 감독 실패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손쉬운 가계대출에 의존해 온 금융업계는 인건비 조정 등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 과 국제금융시장에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근본적으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비판적 분위기를 의식한 은행장들은 은행연합회 주관으로 모임을 갖고 임원 급여 삭감, 직원 임금 동결 등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금융노조가 반발하고 있어 순탄하게 진행될지 미지수다. 금융노조는 물가 상승률 등을 감안해 내년도 임금 인상률로 5.8%를 제시한 상태. 금융노조는 22일 성명을 내고 "대통령의 은행 임금 삭감 발언은 위헌"이라고 비판했다. "헌법이 보장하는 노사관계의 자율성을 부정하는 위헌적 발언"이라는 것이다.

지역의 한 은행원은 "일부 국민들이 은행 임금이 너무 높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대통령이 포퓰리즘적으로 개입해 버리면 헌법이고 노사관계법이고 무슨 소용이냐"라고 반문했다.

이춘수기자 zap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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