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총 207㎞에 이르는 자전거 전용도로 건설을 골자로 하는 자전거 이용 활성화 계획을 발표하면서 대구시의 미적지근한 자전거 정책이 다시 여론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특히 본지와 시민단체들이 달구벌대로에 자전거 전용도로 설치를 제안했을 때(6월 16일, 7월 23일자) 안전과 교통 혼잡, 시민 반발 등을 이유로 단호히 거부한 대구시가 서울시의 이번 계획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비아냥도 적잖다.
서울시 계획의 현실성과 대구의 문제점, 향후 전망 등을 짚어본다.
◆서울시 자전거 혁명은 가능할까=서울시의 이번 계획은 자전거 수송 분담률이 1.2%에 불과할 정도로 자동차 중심의 교통체계를 갖고 있는 대도시에서 과연 현실성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던져줄 정도로 획기적이다. 207㎞의 자전거 전용도로는 ▷도심으로 진입하는 노선 4개축 70㎞ ▷동서남북을 연결하는 13개축 137㎞ ▷도심순환선 7㎞로 구성된다. 간선도로에 설치하는 자전거 전용도로는 차로 1개를 축소하는 도로 다이어트 방식으로 차로와 같은 평면으로 하되 자동차와 완전 분리시켜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또 지하차도, 과속방지턱, 안전펜스 등의 시설물을 곳곳에 설치하겠다고 밝혀 자전거 이용을 가로막는 가장 큰 문제인 안전에 대해 상당히 고민했음을 보여줬다.
자전거 관련 대구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서울시의 이번 계획은 실현 가능성이 어느 정도냐를 떠나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인정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며 "특히 자전거 이용자의 입장에서 문제점을 살피고 대책을 마련한 부분이 긍정적"이라고 진단했다. ▷한강 교량을 자전거로 건널 수 있도록 자전거 엘리베이터나 경사로 설치 ▷도난 방지를 위해 자전거 보관시설에 폐쇄회로TV(CCTV) 설치 ▷락커와 샤워실 등을 갖춘 자전거 전용건물 건설 등이 대표적이다.
계획 속에 자전거 이용 활성화 여부와 관련된 세부적인 문제들이 많이 빠져 있어 향후 운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예컨대 자전거 전용도로에 오토바이가 달리거나 보행자, 노점상이 점거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 기존 자전거 전용도로의 문제점을 어떻게 파악해 개선하려는지 등에 대한 부분은 미흡하다는 것이다.
◆대구시는 왜 안 되나=서울시의 계획이 발표된 22일에 만난 대구시청 공무원들은 대부분 '역시 서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예산이 풍부하고 인력이 뒷받침되니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게 서울"이라며 "아무리 시민들에게 필요한 정책을 입안해도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예산을 확보할 방법까지 만들지 않으면 폐기되는 대구의 현실과는 너무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전거 이용 활성화 문제에 대해서는 '예산이 아니라 대구시의 의지 문제'라는 내부 비판도 적잖았다. 한 직원은 "달구벌대로에 자전거 전용도로를 설치하는 방안의 경우 찬성하는 직원이 많지만 간부들 사이에 부정적인 분위기가 압도적이어서 말도 꺼내기 힘들다"며 "찬성하는 다수 여론보다 반대하는 소수 여론에 더 민감하다 보니 참신한 정책이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는 길이 사실상 막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대구시의 자전거 이용 활성화 계획은 자동차 중심의 기존 도시 교통체계를 가급적 흔들지 않는 쪽에 맞춰져 있다. 공단이나 대학 주변, 아파트 단지 등 지역 내 자전거 이용을 늘리고, 지역 간 연결은 대중교통으로 하는 것이 대도시 교통체계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실무 부서의 경우 기존 자전거 전용도로의 실패가 분위기를 소극적으로 만드는데 크게 작용하고 있다. 대구시는 지하철 1호선 개통 때 2.5㎞에 걸쳐 자전거 전용도로를 야심차게 만들었다. 달서구 경북기계공고 인근과 동구 안심 일대의 인도를 넓히고 그 가운데를 갈라 자전거가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용자는 없고 불편하니 철거하라는 전화만 걸려오는 실정이다. 고산국도 역시 차로에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었다가 시민들의 비판에 밀려 인도로 옮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구시청 관계자는 "지금은 고유가, 친환경 의식 고조 등으로 자전거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상황은 정말 힘들었다"며 "자동차 이용자들을 비롯한 시민 의식의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의지를 갖고 여론을 이끌자=대구시 간부 공무원들의 말대로 간선도로나 도심에 자전거 전용도로를 설치하는 일은 어림없는 일일까.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이나 통학을 한다는 건 대도시 교통체계에 맞지 않는 것일까. 안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시민들은 자전거를 타지 않을까. 간단히 말해 서울에서 가능한 일이 대구에서는 불가능한 것일까.
시민들은 대구시의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 툭 하면 빼드는 시민 불편과 불만이라는 불투명하고 자의적인 방패 뒤에 숨어 안전한 길만 가겠다는 발상으로는 시민들의 의식을 바꾸고 도시를 새롭게 만들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대구녹색소비자연대 안재홍 사무국장은 "서울시의 이번 계획은 현실성 여부를 떠나 자전거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고 시민들 사이에 논란을 일으킨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며 "해 보지도 않고 안 된다는 얘기만 늘어놓지 말고 시민들의 진정한 목소리가 무엇인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경우 성인 남녀 1천5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도로 다이어트 방식으로 자전거 전용도로를 설치하는 방안에 찬성한다는 여론이 67.8%로 반대보다 2배 이상 높았으며, 환경이 개선되면 자전거를 자주 이용하겠다는 시민이 90%를 넘었다.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보지 않으려는 대구시의 시각부터 고쳐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서울의 경우 긴급차량 다음 순위로 자전거의 위치를 격상시켰다는 데 대해 자전거 이용자들은 환호하고 있다.
대구시는 자전거도로 정비계획 수립을 위해 내년 예산에 3억원을 책정해 둔 상태다. 대구시 이군현 도로과장은 "내년 초에 예산이 나오면 연구용역을 맡겨 내년 상반기에는 정비 사업에 나설 수 있다"며 "달구벌대로를 비롯한 간선도로에 자전거 전용도로를 설치하고 이용 환경을 개선하는 등 종합적인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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