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커피의 비밀]오스트리아인과 커피

'비엔나커피'는 음악의 도시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래됐다. 그런데 정작 빈에서는 '비엔나커피'가 없다. 그곳에서는 뜨거운 커피에 달콤하고 부드러운 생크림을 얹은 비엔나커피를 '아인슈페너'라고 한다. 아인슈페너가 미국과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로 넘어오면서 비엔나커피로 알려졌다.

아인슈패너의 유래는 카페로 들어오기 어려운 마부들이 한손에 말고삐를 잡고, 다른 한손으로 설탕과 생크림을 듬뿍 넣은 커피를 마차 위에서 마시게 된 것이 시초였다. 아인슈패너는 사전적 의미로도 한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와 마부를 뜻하고 있다.

빈시민들은 오래 볶아 진하고 풍부한 향을 내는 커피에 우유나 생크림을 곁들인 타입을 좋아한다. 오스트리아는 오스만제국과 오랫동안 전쟁을 했는데 1683년 오스만제국의 군대로부터 빈이 포위당했다. 와중에 오랫동안 오스만제국에서 터키인들의 통역사로 활약했던 폴란드인 게오르그 프란츠 콜시츠키의 도움으로 기독교연합군이 승리, 남겨진 오스만군대 막사에서 잘 말려진 검은 알갱이 500포대가 발견됐다. 그 열매가 바로 터키인들의 필수품인 커피원두였던 것.

콜시츠키는 시민들로부터 이슬람교도들이 남기고 간 이 꺼림칙한 열매와 집도 한 채를 얻었다. 콜시츠키는 이곳에서 커피를 만들었으며, 이곳이 바로 빈 최초의 커피하우스였다. 커피원두를 곱게 갈아 물에 넣고 끓인 터키식 커피는 빈시민들이 마시기에는 너무 쓰고 진했다. 1685년에는 아르마니아계 이민자가 필터를 이용, 커피가루로부터 커피를 분리해냈고, 여기에 우유와 꿀을 더해 새롭고 부드러운 타입의 커피를 개발했다. 이 새로운 커피는 빈 시민들의 입맛에 꼭 맞았고, 빠르게 대중화했다.

초기의 커피하우스는 귀족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커피하우스는 신문을 읽거나 카드놀이·당구·체스를 즐기는 공간이자 사교클럽의 역할을 했다. 갈수록 커피가 대중화하면서 일반 시민들도 커피하우스를 찾게 되었고, 19세기에는 여성들에게도 출입이 허용됐다.

20세기 초반 빈의 커피하우스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보헤미안·예술가·지식인들의 휴식처였다. 지식인 알프레드 폴가는 빈에 번성한 커피하우스에 대해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 옆자리에 벗들이 있어야 하는 곳"이라고 정의했다. 빈시민들은 모두 커피 애호가이자 전문가라고 자부한다. 각자 선호하는 커피와 커피하우스가 따로 있으며 전통적으로 하루 세 번 자신의 단골 커피하우스를 찾았다. 빈시민들은 아침에 카페에 비치된 여러 종류의 신문·잡지를 읽으면서 느긋하게 하루를 시작했다. 편지를 쓰거나 비즈니스를 하고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커피하우스 종업원들은 단골의 이름과 직업은 물론 그들이 평소 마시는 커피를 기억하고 있을 정도였다. 예전 보다 바빠진 오늘날의 오스트리아인들도 커피타임(오후 3시)은 꼭 지킨다.

김영중(영남대사회교육원 커피바리스타과정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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