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윤복이 남장 여자?…소설·드라마로 새롭게 주목

조선 후기의 풍속화가 신윤복은 과연 남장 여자였을까? 얼토당토않은 질문이지만 여성의 심리와 복장, 생활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 그의 작품을 보노라면 그런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아울러 역사상 기록이 너무 빈약한 것도 그가 여자임이 들통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드라마와 소설 '바람의 화원' 덕분에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 신윤복에 대해 알아보자.

◆역사 기록상의 신윤복

250년 전 태어난 신윤복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이유는 '바람의 화원'이라는 소설과 이를 바탕으로 만든 드라마 때문. 단지 신윤복의 삶을 그려서가 아니라 신윤복이 남장 여자였다는 어찌 보면 황당한 상상력이 바탕이 됐기 때문에 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 소설 '바람의 화원'은 지난해 8월 출간 이후 40만부가 팔렸다. 작가 이정명씨가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한 그저 상상력일 뿐이라고 밝혔지만 인터넷에는 '신윤복이 정말 여자인가요?'라는 질문이 꼬리를 잇는다. 하지만 그의 가계도를 보면 남자임을 명확히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장 여자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이유는 그의 그림과 역사상의 기록 때문이다. 여성의 심리와 생활양식까지 섬세하게 재현한 그림을 보고 있으면 과연 남자가 그렸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 아울러 한 시대를 풍미한 화가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기록은 너무나 미미하기 때문에 남장 여자임이 들통나서 기록에서 삭제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록상 신윤복에 대한 언급은 2줄 정도의 간단한 약력뿐이다. 오세창이 쓴 '근역서화징'에 나와있는 내용을 보면, 자는 입부(笠父)요 호는 혜원(蕙園), 도화서의 화원으로 첨사 신한평의 아들이며, 그도 첨사 벼슬을 지낸 사항 등이 기록돼 있다. 아울러 표암 강세황의 '청구화사'에 그가 20대에 '동가식 서가숙'(東家食 西家宿)하며 방황했다는 짧은 언급이 있는 것뿐이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화원이었다. 특히 아버지 신한평은 영조 때 어진(임금의 화상)과 의궤(왕실 행사를 기록한 문서) 제작에 참여한 최고 수준의 화원이었다. 물론 소설과 드라마상에서는 가문의 영달을 위해 다른 화가의 딸인 신윤복을 아들 삼아 입양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는 달랐던 것이다. 아무튼 기록상 신윤복은 분명 남자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

때는 1766년. 도화서 원로화원 강수항은 훗날 정조가 될 세손의 밀명을 받고 비밀리에 사도세자의 초상을 그리던 중 죽임을 당하고, 이를 조사하던 화원 서징과 그의 아내도 죽고 딸은 행방이 묘연해진다. 10년 뒤, 도화서 중견 화원이 돼 새로 들어오는 생도를 가르치던 김홍도는 놀라운 재능을 가진 한 생도를 만나게 된다. 그의 이름은 신윤복. 매번 파격적이고 엉뚱한 그림을 그리는 그는 우여곡절을 겪고서 도화서 정식 화원 시험에 통과하지만 따돌림을 당해 일도 배정받지 못한다.

하지만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다른 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정조다. 정조는 대대적 개혁을 감행하지만 조정 대신들의 반대로 백성들의 실제 삶이 어떤지 알 수 있는 길조차 막혔던 터이다. 정조는 김홍도와 신윤복을 불러 '동제각화(같은 주제로 각자 실력을 겨룸)'를 명한다. 이들의 그림을 통해 백성들의 적나라한 삶과 대신들의 부정부패와 나태함을 알게 된 정조는 이를 뿌리 뽑기 위한 개혁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대신들은 자신들의 평안한 삶을 뒤흔든 개혁을 이끌어낸 통로가 바로 김홍도와 신윤복임을 알고 이들을 쫓아낼 계략을 꾸민다. 너무나 자유분방하고 파격적인 그림을 그리던 신윤복은 이들의 미움을 받아 도화서에서 쫓겨나고 만다.

이렇게 끝나는가 싶던 신윤복의 운명과 그를 대하는 미묘하고 혼란스런 감정의 김홍도. 이때 정조는 이들을 몰래 불러 10년 전 강수항이 그린 사도세자 초상을 되찾아오라는 밀명을 내린다. 김홍도와 신윤복은 사도세자를 죽인 정순왕후 일파의 흉계와 위협을 뚫고 결국 사도세자 초상을 찾아내는 데 성공하며, 강수항의 죽음을 밝히려던 서징이 죽게 된 연유도 알게 된다. 신윤복에 대한 사랑을 느낀 김홍도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임을 깨닫고 떠나려하지만 이때 놀라운 사실이 밝혀진다. 신윤복은 원래 서징의 딸이었으나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몰래 남장을 하고 남자들에게만 허락된 도화서에 들어왔다는 것.

◆신윤복에 얽힌 다른 픽션들

오는 11월 개봉하는 영화 '미인도' 역시 남장 여자라는 가설 아래 신윤복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영화는 다분히 외설적인 장면들로 채워질 전망. 혜원의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인 '단오풍정'(端午風情)은 단오절을 맞은 여인들의 풍경을 담은 작품. 목욕을 하는 아낙네들을 바위틈에서 몰래 훔쳐보는 동자승의 표정이 해학적이고 에로틱한 느낌을 자아낸다. 흰 속살을 드러내고 개울에서 목욕하는 여인들의 모습이 실사로 영화에 등장한다. '이부탐춘'(二婦探春)은 봄나들이 나온 두 아낙네가 암수 서로 엉겨 붙어있는 개를 지켜보는 그림. 몸종으로 보이는 여인이 동행한 여주인을 꼬집는 모습을 통해 은유적으로 여성의 성적 흥분을 다루고 있다.

작가 김재희가 펴낸 장편소설 '색, 샤라쿠'에서 신윤복은 정조의 밀명을 받아 일본에 잠입한 뒤 놀라운 활동을 펼친 화가로 등장한다. 바로 일본 역사 속에 전설적인 화가인 샤라쿠가 바로 신윤복이라는 것. 샤라쿠는 일본 에도(현재 도쿄)에서 1794년 단 10개월간 활동하며 100여점이 넘는 풍속판화를 남기고 잠적한다. 샤라쿠는 당시 일본에서 성행했던 가부키 배우의 생생한 모습과 홍등가 여인들의 화려한 모습을 판화에 담았다. 신윤복이 생동감 넘치는 기녀의 모습을 화폭에 담은 것과 일맥상통한다. 소설 속에서 신윤복은 그저 그림을 그리려고 일본에 간 것이 아니다. 정조의 밀명을 받아 간자(스파이)로 일본에 침투한다. 그렇다고 해도, 전형적인 첩보영화에 나오는 근육질의 주인공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날렵한 몸매에 누구나 한눈에 반할 정도로 미남인 주인공 신가권(신윤복의 본명)은 그림 그리는 재주와 여성을 유혹하는 기술을 가진 망나니로 등장한다. 그러나 단원 김홍도의 눈에 띄어 그림을 배우면서 진정한 예술가로 거듭나고, 급기야 왕의 밀명을 받고 일본에 파견된다. 작가는 신윤복이 일본에서 바람처럼 사라진 뒤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 필생의 역작 '미인도'를 완성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덧붙였다. 물론 신윤복이 샤라쿠라는 가설 역시 결코 역사적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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