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악스런 '묻지마' 살인 사건이 다시 발생했습니다. 서울 논현동 고시원 살인·방화 사건의 범인 정모(30)씨는 전형적인 은둔형 외톨이라고 합니다. 도대체 세상을 향한 그 같은 섬뜩한 저주심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정씨는 한국영화 '달콤한 인생'(2005년)을 보고 범죄를 저질렀다고 합니다. 영화 속 주인공이 멋있어 보여, 범행 도구를 준비했다는군요.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은 조직 보스로부터 버림받은 주인공의 처절한 복수극을 주내용으로 삼은 영화입니다. 평단으로부터는 한국형 누아르라는 호평을 받았지요. 참, 사람마다 보는 것이 제각각인 듯합니다. 범인의 눈엔 영화 속의 폭력 묘사만 들어왔나 봅니다. '달콤한 인생'은 인생무상을 이야기합니다. 주인공(이병헌 분)의 내레이션이 흐르는 엔딩신이 인상적입니다.
이룰 수 없는 사랑, 이룰 수 없는 꿈 때문에 가슴 저민 기억이 누구나 있을 겁니다. 상처 없는 영혼은 무의미하다 했던가요?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을 연상케 하는 내레이션으로 끝맺는 '달콤한 인생'의 인트로가 불교 선문답인 점이 이채롭습니다.
감정은 몸 어디에 자리해 있을까요. 생리학적으로 감정은 뇌 활동의 결과라고 합니다만,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은 듯합니다. 사랑은 심장이 먼저 알아채고, 감정은 오장육부 상태에 영향을 미칩니다. 대담하다, 소심하다, 쓸개가 빠졌다 등 감정을 나타내는 우리말 중 오장육부와 관계된 것들이 많은 이유가 있을 겁니다.
대구구치소장을 지낸 분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변사한 재소자의 부검에 입회를 많이 했는데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일수록 간이 크더라는군요. 죄의식 때문에 생기는 스트레스로 생기는 몸속 유해 물질을 간 큰 사람은 빨리 해독한다는 겁니다. 간이 클수록 죄의식이 적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습니다.
인간에게는 오감(五感)이 있다고 합니다. 그게 전부는 아닐 겁니다. 육감이라는 것도 있고 중력을 느끼고 상하를 인식하며 시간을 알아채는 감각도 분명히 존재하지요. 타인의 고통을 인식하는 감각도 있을 겁니다. 그게 없는 사람이 바로 사이코패스이지요. 정씨 같은 사이코패스에게는 타인의 고통을 인식하는 회로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듯합니다.
세상이 흉흉하고 불안한 경제 상황도 마음을 옥죄어 옵니다. 그래도 모든 것은 마음먹기 달렸다고 믿습니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차용됐던 엘라 휠러 윌콕스의 시 '솔리튜드'(Solitude)의 한 구절을 소개합니다. '웃어라, 그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그럼 너 혼자만 울 것이다.' 편안한 주말 되십시오.
김해용 기획취재부장 kimh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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