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사 3층 편집국에는 하루 2회 이상 꼭 걸려오는 전화가 있습니다. 어눌한 말투의 이 남성은 자신의 이야기를 꼭 신문에 실어달라고 한 뒤 전화를 끊습니다. 직장생활 중 차량사고를 당했다는 이분은 혼수상태로 있는 동안 모든 것을 잃었다고 합니다. 야간 당직이라도 서면 한 번씩은 꼭 받게 되는데, 몇 년째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기에 전 직원이 다 알 정도가 됐습니다. 특정 기자에게 수년간 전화를 건 여성분도 있습니다. '해당 기자가 자신을 괴롭힌다며 그만 자신을 놓아줄 것'을 사정합니다. 직접 찾아 오기도 했다는데 언제부턴가 종적을 감췄습니다. 저마다 사연을 갖고 본사에 전화를 거는 분들의 이야기는 억울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전화를 걸고 찾아가는 것이 저희 신문사만은 아니더군요. 공공기관을 찾는 민원인도 많습니다. 이들 가운데에도 애처로운 사연이 있는 분이 많지만 '괴짜'라고 할 만한 분들도 있습니다.
◆연령도 내용도 다양한 민원인
대구의 어느 구청장실을 들락거린다는 50, 60대 남성인 A씨는 정말 '괴짜'인 분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민원인은 아닙니다. 이분은 2, 3개월마다 한 번씩 구청장실을 찾아 기도를 드립니다. 20~30분에서 길게는 1, 2시간 구청장실이 빌 때까지 기다려 꼭 기도를 하고 돌아간다는군요. 기다리는 동안엔 아무 말도 않는답니다. 그러나 기도가 시작되면 '예산을 잘 따게, 민원 해결 잘 되게, 구민 편안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고는 그냥 가버립니다.
30대 마약중독자 B씨도 있습니다. 구청장실에 들러서는 '마약 살 돈을 달라'고 했다네요. 바지를 벗기도 하면서 막무가내로 떼를 썼는데 스스로 일을 하도록 유도했다는군요. 몇 번씩 왔다갔다 하면서 자신의 얘기를 하는데 마약 가격이나 사용법에 대해서도 들려줬다고 합니다. 출감자 중에는 출소 뒤 3개월간 기초생활수급자 대우를 받아 통장에 들어오는 지원금에 맛이 들어 이를 연장해 달라고 떼를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물론 개중에는 과일장사를 시작해 명절 직전 물건 좀 팔아달라며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하고요.
대구의 한 일간지의 박모 기자에겐 몇 해 전 실종된 20대 여성의 가족한테 연락이 계속 옵니다. 당시 출입하던 경찰서에서 수사를 맡았는데 용의자가 해외로 도주한 미제 사건의 피해자들이지요.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다 보니 답답한 마음에 전화해서는 "점을 봤는데 시체가 어디 있다 하더라, 살인자가 어디 있다더라"는 얘기를 한다네요. 특별한 민원 없이 민원실에 와서 죽치고 앉아 있다 가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 중엔 꼭 소주값이라도 얻어야 자리를 떠나는 분도 있는데, 자주는 안 온다고 하는군요.
◆끝없는 들이대는 스토커 민원인
검찰이나 법원은 물론 구청, 세무서 등 안 가본 곳이 없는 아주머니도 있습니다. 해당 기관 직원은 물론 출입하는 기자들과도 안면을 트고 지낼 정도로 나름대로 유명한 분이죠. 그런데 이분의 사연을 들어보면 좀 수긍이 갑니다. 군수품 납품업을 하다 여의치 않게 교도소에 다녀온 뒤 인생이 송두리째 날아갔다고 합니다. 출소해 보니 남편은 젊은 여자와 눈이 맞아 도망갔고 아이들은 보육원에 맡겨졌습니다. 살던 집도 개발구역에 편입돼 없어졌다네요. 고학력 출신의 아주머니는 나름대로 사라진 집을 찾아 보겠다며 각종 서류를 만들어 여기저기 찾아다녔습니다. 처음에는 욕도 섞어 가며 고래고래 고함도 지르고 노력했다는데 결과는 영 신통치 않았나 봅니다. 그 과정에서 법률 지식이 엄청나게 늘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한 구청의 배려로 기초생활수급대상자가 된 뒤 원룸을 구했고, 최근엔 영세민아파트를 얻었다고 합니다.
스토커형 민원인은 방송국에 많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TV를 통해 얼굴이 노출되다 보니 그런가 봅니다. 한 지역방송국 기자는 "기자의 인상이나 목소리가 마음에 들면 자기에 대한 호감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방송기자라면 누구나 그렇게 스토킹을 당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남자 기자에겐 여자가, 여자기자에겐 남자가 성가시게 하는 경우가 많다는군요. 처음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하는데 좀 지나면 없다고 하거나 안 받으며 일단 피하고 본다는군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직접 만나 "제발 하지 마라"고 사정한 기자도 있다고 합니다.
예전 시청 민원실에는 팩스를 편지처럼 40~50장 넣는 여자분이 있었다고 합니다. 남편의 간통 때문에 피해를 입은 여성인데 당시 한 직원은 몸서리가 나서 주변에 "전화 오면 죽었다고 해라"고 시켰다고 합니다. 워낙 독특한 민원인을 많이 봐온 한 구청장 비서실 직원은 "무조건 피하기보다 민원인의 입장에서, 가족처럼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더라"며 자신만의 '비책'을 밝혔습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