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그리운 시이모님

요즘엔 어느 계절이나 상관없이 마음 갈 때마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숱하게 많지만 각각 여행마다 느끼는 감정이야 다 색다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가을하면 먼저 설악산 단풍을 떠올리게 되고 그러면 몇 해 전 가을여행을 나섰던 시이모님을 떠올리게 된다.

시어머님의 사촌언니였던 시이모님은 그때 당시엔 경제적으론 부러울게 없으시던

재력(財力)을 가지셨지만 당신이 낳으신 자식이 없었다. 그리고 당신도 무남독녀였다.

비록 당신이 낳진 않았지만 아들 둘을 온갖 정성으로 키웠었다. 늘 마음으로 외로워 하셨고 그런 중에도 정이 넘치시는 분이라 사촌 조카들을 친자식처럼 챙기셨다. 따뜻한 말 한마디만 건네도 눈물을 글썽이실 정도로 정이 넘쳤다.

그럼에도 시이모님은 여걸처럼 호탕하신 성품에 두려운 존재이기도 했었지만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의논할 일은 언제나 시원한 답을 주시는 그야말로 인생의 대선배셨다.

내 생활이 넉넉하지 못한 것을 마음 아파 하셔서 늘 안타까워 한 탓에 우리 시어머니 돌아가시고 시이모부님마저 돌아가시고 홀로 남으신 시이모님께서 "너! 시집살이하느라고 여행 한번 제대로 못했지? 이번 가을엔 내가 설악산 구경을 시켜주마. 날 잡아서 같이 가자."

그때에 시이모님 연세 여든이셨다. 평소에 당뇨가 있으셔서 걸음걸이도 느리신 분께서 조카 내외 구경 시켜주시겠다고 제안을 하신다.

사실 우리들이야 친구들과 틈틈이 여행도 하고 설악산 구경도 했지만 고마운 마음에 노인네 모시고 장거리 여행이 쉽지 않을 것임에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얘야 여긴 오색 약수터란다. 여긴 백담사 가는 길이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울릉도 구경도 시켜주마." 희망 없는 약속처럼 들렸지만 시이모님은 마음으로 모든 것을 해 주고 싶어 하셨다.

당신이 아닌 다른 여자가 낳은 자식을 둘이나 길렀건만 모든 재산 다 빼앗기고 버림받으신 시이모님은 노인 요양병원 침대 한 칸에 의지하신 몸이 되었다.

생활이 풍요로울 때 시이모님 은혜 안 입은 친척들이 없건만 돈 없고 건강 잃고 목소리 힘 없는 노인이 되니까 천지에 의지할 사람 없는 너무나 가여운 모습으로 변했다.

어느 날 그나마 병실에서도 사라지시고 없었다. 어떤 분이 퇴원시켜 모시고 갔다는 말만 전해 들었을 뿐 누구도 모른다고 했다. 딱히 가실 만한 곳이 없는 분이라 궁금하지만 찾을 길이 없었다.

아마도 절에 열심히 불공을 들이시던 분이라 은혜 입은 어떤 이가 고마움을 잊지 않고 인생의 마지막을 지켜주고 있는 것 같아서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내가 사는 것이 고단하다고 길 잃은 노인네 모른척한 나. 은혜를 입으신 모든 친인척 중, 그 중에 나도 한 사람이었기에 은혜를 갚을 줄 모르는 철면피가 바로 나라는 생각에 양심의 가책으로 마음이 힘들다.

이 가을 단풍이 질 때면, 설악산 단풍 절정이 언제라고 뉴스를 들을 때면 "내가 울릉도 구경을 시켜주마"하시던 시이모님의 약속이 떠오른다. 어른들이 주는 사랑은 언제나 내리사랑이었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이라도 베풀어주고 싶은 내리사랑이었다.

그리고 몇 해가 흘러서 지금은 생사도 알 수 없게 된 시이모님. 언젠가 다시 설악산을 찾으면 시이모님의 발자취마다 그리움을 심어놓을 것 같다.

박연옥(대구 달서구 죽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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