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정태의 중국이야기] 주한 중국대사의 이취임

지난 10월 20일 오전, 3년간의 임기를 마친 닝푸쿠이(寧賦魁) 주한중국대사가 서울을 떠났다. 닝푸쿠이 대사는 떠나기 전 시 한 수를 남겼다.

3년 전/ 단풍잎이 하늘을 물들일 무렵/ 중국인민의 정과 우정을 가슴 가득 품고/ 이 땅을 밟았다/ 아직도 생각이 난다/ 청와대에서 국서를 건네던 장엄한 순간을/ 그때부터/ 나는 이 땅과 함께했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이 땅/ 두 눈으로 아름다움을 확인했다/ 번화한 서울, 평온한 경주, 설악의 수려함과 제주도의 바람/ 마치 악곡과 같은 이 땅/ 그 웅대함을 가슴으로 들었다/ 유구한 역사, 다채로운 문화, 부지런한 국민, 지칠 줄 모르는 투지/ 이 땅은/ 나의 조국과 지척지간/ 이 땅의 사람들은 우리 동포와 형제처럼 가깝다/ 베이징올림픽 때의 환호를 잊지 못하고/ 쓰촨대지진 때 함께했던 그 흐느낌을 잊지 못한다/ 우리도 붉은 악마와 함께 함성을 지르며 응원했고/ 불타는 남대문을 보고 안타까워했다.

중국과 한국 사이에는 단지 한 조각 바다/ 우리와 당신들의 마음은 시종일관 함께였다/ 시간이 화살처럼 1000여일 흘렀고/ 이 땅에 대한 내 사랑도 1000일 동안 한 방울씩 모였다/ 만약 시간이 좀 더 있다면/ 이 땅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미약한 힘을 다해 중국 인민들의 우정을 전하고 싶다/ 아직 떠나지도 않았건만/ 벌써부터 연민이 솟는다/ 김치찌개의 향기/ 판소리의 운치/ 아직 떠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그리움에 사무친다/ 효자동 중국대사관 앞거리의 은행나무/ 길거리 떡볶이 할머니의 환한 미소/ 단풍잎이 또다시 하늘을 붉게 물들일 무렵에/ 미련을 가진 채 귀국의 여정에 오른다/ 3년의 아름다운 추억과, 한국 사람들과의 깊고 두터운 우정/ 벌써 배낭에 담아, 가슴 속 깊이 묻었다/ 안녕, 서울/ 안녕, 한국/ 후일 우리가 꼭 다시 만날 것을 믿는다/ 중화인민공화국 주대한민국 특명전권대사 닝푸쿠이/2008년 10월 서울에서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정을 토해 놓은 닝푸쿠이, 그는 진정한 한국통이었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다. 김일성대학 조선어학과를 졸업한 그는 유창한 한국어 구사는 물론이고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이해한 사람이었다. 1977년 중국외교부 업무를 시작한 후 줄곧 아시아지역과 한반도문제를 담당했다. 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4자회담과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의 6자회담을 주관해왔다. 돌이켜보면 그가 재임한 3년 동안 남북한관계는 순조로웠다. 과거와 달리 상호불통으로 불신이 증폭되어 위험상황까지 치달았던 적이 없었다. 한중관계에서도 인적·물적 교류가 급격히 증가했으며, 베이징 올림픽 때도 완벽한 공조를 만들어내었다. 그는 한국과 중국, 중국과 북한, 남북한 정치관계에서 전문중매쟁이로서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런 그가 떠났다.

그 후임으로 오는 10월 26일 청융화(程永華) 주한중국대사가 부임한다. 1954년 9월생 54세, 51세의 닝푸쿠이 대사보다 연배는 높지만 문화대혁명이 종결된 다음해인 1977년에 함께 외교업무를 시작한 동기이다. 닝푸쿠이와는 달리 첫 발령지가 일본이었고, 직전에 근무했던 말레이시아를 제외하면 주일본중국대사관과 중국외교부만을 순회했다. 그래서 그는 외교가에서 일본통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성장배경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 언론은 그가 지린성 출신이고 대학을 졸업했다고 하지만 그럴 리 없다. 그의 학창시절이었던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중국은 문화대혁명이 진행되고 있었다. 소위 그는 문화대혁명세대이다. 마오쩌둥의 전위부대였던 소년병 홍군(紅軍)들이 동갑내기들이었고, 모든 지식분자들을 농촌이나 공장에서 일하게 했던 하방운동(下放運動)의 희생세대였다. 학문이 폐쇄되고 오직 마오쩌둥사상과 사회주의혁명만이 존재하던 암흑기에 그가 성장한 것이다.

문화대혁명이 끝나자마자 중국은 자존심을 버렸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이 대세가 될 무렵에 청융화 대사는 일본에 갔다. 이유는 간단하다. '돈벌이'. 그런 그가 말레이시아를 거쳐 한국에 왔다.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그의 눈에 비친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닝푸쿠이 대사가 느꼈던 정감? 김치찌개의 향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혹시 실리를 추구하는 우리 정부와 궁합이 맞는다면, 신나는 돈벌이 한판은 기대해봄직하다.

이정태(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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