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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의 시사 코멘트] 책이 타는 불빛에 드러난 세상의 모습

지난 18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이 책들을 태웠다. 우파 학자들이 쓴 대한민국 근현대사 교과서들이 불길에 사라졌다. 그 사건을 보도한 신문은 그저 사진만 싣고 밑에 한 줄짜리 설명을 달았다.

어떤 상황에서 나오더라도 책 태우기는 끔찍하다. 생각하기와 글쓰기는 사람의 본질적 특성이다. 정리된 생각을 담은 책을 태우는 것은 그래서 궁극적 야만이다. 책을 태우는 것은 그 책을 쓴 사람과의 공존을 거부하는 것이다. 하이네가 경고한 대로, 책을 태우는 사회는 끝내 사람들을 태운다.

이번 일을 특히 음산하게 만드는 것은 책을 태운 것이 권력이 아니라 시민들이었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책을 태운 것은 사람들의 생각을 통제해서 자신의 권력을 지키려는 종교적, 정치적 권력이었다. 그런 책 태우기는 권력의 한 측면이었고, 그래서 아무리 무지막지하더라도, 익숙한 면이 있었다. 보통 시민들에 의한 책 태우기는 시민의 일부가 다른 일부를 더불어 살 수 없는 존재로 여긴다는 징후다. 이번 책 태우기는 권력의 책 태우기보다 훨씬 더 음산하고, 문제적이고 다루기 어렵다.

이번의 책 태우기는 우리 사회의 어려운 상황을 또 다른 측면에서 드러냈다. 시민들에 의해 태워진 책은 대한민국을 높인 책이다. 대한민국이 어렵사리 세워진 과정을 밝히고 우리가 이룬 업적들을 높이 평가했다. 대한민국을 낮추고 비난한 것이 아니다.

실은 그 책들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지나치게 왜곡하고 폄훼한 현행 근현대사 교과서들에 대한 대응으로 쓰여졌다. 이제는 잘 알려진 것처럼, 현행 교과서들은 거의 모두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북한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에 의해 쓰여졌다. 그들은 북한의 압제적 정권과 북한 주민들을 구별하지 않았고, 북한을 사람들이 살기 좋은 사회로 기술했다. 반면에,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기회가 나올 때마다 훼손하고 우리 사회의 큰 성취는 깎아내렸다. 실제로 그런 교과서들을 읽어본 사람들은 모두 터무니없는 내용에 놀란다. 그리고 우리 학생들이 그런 책들을 통해서 우리 역사를 배워왔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놀람과 두려움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올바로 배울 교과서들이 실제로 쓰여져서 학생들 손에 들어가야, 문제를 풀 바탕이 마련되는 것이다. 그런 인식에서 '대안 교과서'라는 이름을 단 교과서가 쓰여진 것이다.

이제 그런 책이 태워졌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 대해 아픈 얘기를 해 준다. 생각과 글의 근본적 성격은 사회의 지배적 지적 질서에 의해 결정된다. 지배적 지적 질서를 따르는 생각과 글은 정설(orthodoxy)에 속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설(heterodoxy)로 분류된다. 이런 사정은 과학과 종교에서 특히 뚜렷하지만, 사회에서 통용되는 지식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교과서는 사회의 완전한 구성원들이 되려는 청소년들이 배울 지식들을 담는다. 당연히, 정설들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경우,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관한 올바른 지식과 인식을 얻는 것이다. 정설들을 실은 책이 이설들을 실은 책의 지지자들에 의해 대낮에 수도 한복판에서 태워진 것이 우리 현실이다. 주요 신문이 그 사건을 단 한 줄의 설명이 딸린 사진으로 보도한 것도 우리 현실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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