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풍작 속 흉년 맞은 농촌

농산물 가격이 폭락했다. 배값은 작년 이맘때의 반 토막밖에 안 된다. 한창 출하되는 사과값은 작년의 60% 수준이다. 밤 농민들은 수확마저 포기한다. 고랭지 채소 밭에선 배추와 무가 그냥 썩어간다. 감'대추값도 내려앉긴 마찬가지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사태의 일차 원인은 올해의 유례 드문 풍작이다. 비가 별로 안 내려 일조량이 많은 가운데 태풍 한 번 없이 가을이 닥친 것이다. 과일뿐 아니라 쌀도 그래서 지역에 따라 20%나 증산되리라 점쳐질 정도다. 그런데도 추석이 너무 일찍 찾아옴으로써 과일은 집중 소비 기회마저 잃었다. 그 뒤로는 어수선한 경제 사정 때문에 또 소비가 뒷걸음질쳤다. 악재가 겹치고 겹쳤다.

국가가 나서서 일부 과일을 낮은 값에나마 사들여 폐기함으로써 가격을 지지해 보려 한다지만 충분조건은 못 된다. 지역에 따라 농민들 스스로가 비상대책모임을 구성해 생산량 일부를 자율 폐기하려 나섰으나 바위에 계란 치기다.

상황이 이런 데도 농업 비용은 다락같이 뛰었다. 기름값'비료값'사료값 안 뛴 게 없다. 지난 일 년 사이 치솟은 벼농사 비용이 15%를 넘는다는 추계도 나와 있다. 농사 지어봐야 생산비도 안 된다고 했다. 농심이 어지러울 수밖에 없다. 그게 이번 달 들어 전국에서 벌어지는 농민 시위의 원인이다. 직불금 파동은 거기다 기름을 갖다 붓는 꼴이 됐다.

지금 상황에서 농산물 가격 지지 시스템의 부실을 탓하는 것은 한가한 일이다. 그런 일을 제대로 못하는 농협의 무기력함에 핏대 세우는 일도 미뤄둬야 할 판이다. 무엇보다 급한 건 시간을 다투는 현재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대부분 시민들의 신경은 불안한 경제 정세에 곤두서 있다. 도시인들은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내일 걱정에 마음마저 위축됐다. 당장 쓸 돈이 있는 사람조차 지출을 꺼린다. 그런 분위기엔 농민들의 소외를 더 키우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어려울 때일수록 마음을 모아야 한다. 서로의 소외감이라도 녹여줄 수 있어야 우리 사회에 정이 통하고 믿음이 돌 수 있다. 마침 지방정부들도 지역 농산물 팔아주기 운동에 나선다고 한다. 홍수출하기의 취약성이라도 덜어주자는 뜻일 게다. 비록 힘들더라도 사과 한 상자, 배 한 상자 더 사고 소비하는 게 그에 동참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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