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가성(假性) 웃음

그녀를 수술한 것은 20여년 전이다. 그녀가 고등학교 2학년 때다. 얼굴이 둥그렇게 살이 찌고 피부는 검게 변했다. 혈압도 높았다. 여드름도 생겼고 솜털도 굵어졌다. 뇌하수체에 부신피질 자극 호르몬을 분비하는 종양이 발견되었다. 다행히 수술로 종양은 완전히 제거되었다. 얼굴 모양도 점차 정상인처럼 변해갔다. 그 후 환자는 병원에 오지 않았다.

10여년이 흐른 후 그녀는 다시 입원했다. 왼쪽 뇌에 피가 안 가는 뇌경색이 발생해서였다. 의식은 흐려져 있었고 오른쪽이 마비되어 있었다. 고등학교 때의 귀여운 모습은 아니었다. 30대의 여인으로 변해 있었다. 소녀의 모습이 여인의 모습으로 변한 과정이 내 머릿속에서 연결되지 않았다.

치료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나 다행히 어느 정도는 회복되었다. 그러나 많은 장애가 남았다. 오른쪽의 마비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절뚝거리며 걸었고 손의 사용도 불완전했다. 말이 되지 않았고 슬플 때는 자꾸 웃는 표정이 되었다. 우는데 웃는 표정이 되고 웃는 소리가 났다. 가성(假性) 웃음이 생긴 것이다.

가성 웃음은 뇌간의 위쪽인 대뇌에 병변이 있으나 연수(숨골)에 병변이 있는 것처럼 증상이 나타나는 가성 연수성(假性 延髓性) 마비 징후(徵候)의 일종으로 환자가 슬퍼서 울어도 웃는 표정이 되고 웃음소리가 난다.

게오르규의 소설 '25시'에서 요한 모리츠는 13년간의 수용소 생활을 끝내고 석방된다. 열여덟 시간의 자유를 즐기다가 어쩔 수 없이 다시 온 가족을 데리고 이번에는 미군수용소로 지원해야 할 상황이 온다. 미군들은 그들이 자발적으로 지원하고 감격해 한다는 모습을 신문에 내려고 사진을 찍으려고 한다. 요한 모리츠 가족에게 웃는 모습을 강요한다. 그들은 강요된 웃음을 지으며 사진에 찍힌다. 마음속으로는 울고 있으면서 말이다.

세상에는 울면서 웃는 웃음도 있고 눈물보다 더 슬픈 웃음도 있다. 앞에 언급한 환자의 웃음은 슬퍼해도 어쩔 수 없이 웃는 모습이 되는 웃음이다. 요한 모리츠의 웃는 모습은 울면서 웃는 모습을 만드는 웃음이다. 수동적이든 능동적이든 가성 웃음은 슬픈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가성 웃음을 짓고 산다. 속으로는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얼굴에는 함박꽃 같은 웃음을 피울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울면서 웃는 웃음이 되고 눈물보다 더 슬픈 웃음이 되는 것이다. 삶이란 가성 웃음을 웃으면서 세상이라는 통 속을 지나가는 것이라는 생각도 한편으로 든다.

임만빈 계명대 동산병원 신경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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