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사람이 희망이다

통화를 하던 후배가 덜컥, 회사를 그만둬야겠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로 더는 참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조직을 떠나는 대부분의 이유가 인간관계는 아니지만 나 또한 인간관계로 고통을 받아 보았기에 더 참아보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고 먹먹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

서울에서 십 년 넘게 여성운동을 해 온 선배의 강의를 듣고 난 후 "십 년이나 해 온 힘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답은 "사람"이라고 했다. 얼마 전 열린 지역 포럼에서 만난 성매매 운동가도 바로 이 '사람' 덕분에 일한다고 했다.

뾰족돌이 둥근돌이 되기까지 여러 돌과 부딪치는 시간이 아프긴 하지만 후회로 남아 버린 관계 또한 소중한 관계라고 생각된다. 우리에게 아픔을 주는 사람은 놀랍게도 서로 믿고 사랑하는 관계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관계로 인해 떠나는 이들은 모두가 가슴 한쪽이 시리는 아픔을 경험한다. 특히 그 관계가 나면서부터 만나는 가족이라면 더욱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는 일이 많다. 그렇기에 상처가 깊은 사람일수록 그 상처가 치유되면 다른 사람의 아픔에도 귀 기울일 수 있는 넓은 마음을 하늘이 선물로 주는 것일까.

좋은 관계란 꾹 참고 나만 희생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가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조율 가능한 관계가 건강한 관계이다. 세계각국의 이혼사유 중 1등이 바로 '성격차이'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 나와 똑같은 성격은 한 명도 없다. 너와 나의 성격이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차이를 존중해 주는 것이 첫걸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갈등도 필요하다. 갈등을 잘 해결해 나가는 경험이 많을수록 그 관계는 든든해지고 깊어진다. 사람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좋기만 한 관계는 없다. 비록 다투고 삐걱거릴지라도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이 느껴지면 건강 좀 챙기라고 화를 내는 후배도 사랑스럽다. 감기 기운 있다는 말을 기억하고 전화로 챙겨주는 선배언니의 민감성에 눈물이 난다. 행사 때 사람 모으는 것이 걱정이라고 했더니 열심히 알아봐 주는 선배언니가 있어 부러울 것이 없다. 부탁을 들어주어 고맙다고 하니 도울 수 있어 내가 기쁘다고 말하는 친구를 보며 감동 먹는다.

오늘도 나는 사람 때문에 울고 사람 때문에 웃는다. 사람으로 인해 상처받고 또 그 사람으로 인해 인내를 배운다. 좋은 관계는 당연히 생기는 것이 아닌 서로가 자신을 조금씩 양보해야 한다. 깊고 친밀한 관계를 원하는가. 그럼 자신이 깊고 친밀한 사람이 될 준비를 하자.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은가. 그건 불가능하니 단 한 사람에게라도 집중하자. 사람만이 희망이란다. 늘 듣던 그 말이 오늘은 더욱 희망적으로 들린다.

조윤숙(대구여성의 전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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