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참사랑을 통해 우리가 더 배울 수 있었습니다. 머리 숙여 감사 드립니다."
지난 25일 오전 10시 대구 중구 경북대 의과대학 마당에는 검은색 정장을 입은 500여명의 사람들이 고개를 숙여 고인들의 넋을 기리고 있었다. 이들의 앞에는 14개의 관과 화장 처리된 유골함 2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관과 유골함의 주인공은 이 세상과 작별한 뒤 의학 발전을 위해 자신의 몸을 해부 실습용으로 기증한 사람들. 참배객은 유족들과 경북대 의학·치의학전문대학원·간호대학 학생들이었다.
시신 기증자 16명의 명복을 비는 이날 장례식의 시신 기증자 중에는 고(故) 최영남(세례명 안젤라·2006년 작고) 할머니도 있었다. 홀몸으로 40여년을 살아오며 기초생활수급자로 노년을 보내면서도 먹고, 입을 것도 아껴가며 재봉일을 해 모은 6천여만원을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전해 달라"며 기부하고 세상과 작별한 터였다.
최 할머니를 오랜 기간 지켜봤다는 이수만(59)씨는 "주변에서는 시신 기증을 만류했지만 할머니의 뜻이 워낙 확고했다"고 기억했다. 암으로 투병해오던 최 할머니는 특히 "정부의 도움을 받아 살아남았는데 뭘 더 가져가느냐"며 "몸뚱이라도 좋은 곳에 써달라"고 지인들에게 전했다는 것.
"할머니께서는 가실 때까지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고 가셨습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우리를 일깨우신 할머니를 잊지 않겠습니다."
특히 대구는 타 지역에 비해 강한 보수성 때문에 시신 기증자가 턱없이 부족해 최 할머니를 비롯한 16명의 시신 기증자들의 헌신은 더욱 숭고했다.
정성광 의학전문대학원장은 조사(弔辭)에서 "해부학이 의학 기본 과정 중 기본임에도 유교적 정신세계가 강하게 남아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정신적 고통이 늘 따른다"며 "시신을 기증해주신 유족들과 고인의 가르침을 받아 질병퇴치에 더 정진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장례식이 끝난 뒤 관은 고인들을 직접 해부했던 학생들이 4인 1조가 돼 운구했다. ▷권영호 ▷김부강 ▷김영희 ▷김일삼 ▷박경조 ▷박창수 ▷박인숙 ▷윤원화 ▷이동술 ▷이춘용 ▷이종희 ▷조용태 ▷장의철 ▷정동진 ▷최정희 ▷최영남. 16구의 시신은 이날 오후 따뜻한 가을볕을 맞으며 흙으로 돌아갔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이재명, '선거법 2심' 재판부에 또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