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제2의 외환위기가 도래할 것인가

미국발 금융위기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글로벌 위기로 진전되었고 금융에서 실물경제로 급속히 전이되는 현상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 속도와 크기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다. 지난 9월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 파산 사태 이후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는 금융회사의 부실자산 매입, 은행 자본 확충, 은행 간 자금거래에 대한 정부의 지급보증, 예금보장 한도 확대 등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과감한 대책을 발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금융시장은 주가폭락과 자금경색 등 불안과 위기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파키스탄, 헝가리 등 10여개 국가가 국가부도사태에 직면하여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였다.

국내 금융시장도 주가가 연일 대폭락을 거듭하여 10월 24일에는 KOSPI 지수가 938을 기록하였고, 미화 1달러당 원화 환율이 1천422원까지 급상승하였으며, 자금경색이 심화되고 있다. 정부가 10월 19일, 국내은행의 외화자금 조달 시 1천억 달러의 정부 지급보증과 은행권에 대한 300억 달러의 외화 유동성 공급 등을 내용으로 하는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한 이후에도 금융시장은 여전히 요동치고 있으며, 이는 실물경제에도 영향을 미쳐서 내수경기의 침체와 아울러 수출마저 크게 위축되고 있다.

이처럼 각국 정부의 과감한 대책발표 이후에도 글로벌 금융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신뢰의 위기 때문으로 보인다. 거래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기본으로 하는 금융시장에서 세계적인 투자은행이 파산하고 미국 최대 보험회사가 구제금융으로 살아남는 상황을 경험한 이후 금융기관 상호 간 신뢰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자금거래를 기피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금융시장의 신뢰회복을 위해 각국 정부가 발표한 은행간 자금거래에 대한 정부의 지급보증이나 예금보장 한도 인상 등의 조치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신뢰의 위기가 점차 해소되고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하여 IMF의 구제금융을 지원받고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엄청난 고통을 경험한 바 있다. 일부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제2의 외환위기에 직면하여 10여 년 전의 고통을 다시 겪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번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1997년의 외환위기 때와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기 때문에 그러한 고통을 다시 겪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첫째, 현재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는 약 2천400억 달러로서 외환위기 당시에 비해 10배 가까이 되며, 외환보유액에 대한 단기외채의 비율이 외환위기 당시의 264%에 비해 현재는 약 63% 수준이므로 외채상환을 못하여 국가부도 상황에 직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둘째, 1997년 말 우리나라 기업들의 부채비율이 평균 425%였으나 금년 3월 현재는 92.5%에 불과하여 기업들의 재무구조가 크게 개선되었고,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도 외환위기 당시에 비해 크게 줄어들어 금융기관들의 재무건전성도 좋아졌기 때문에 위기 극복 능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다만, 외환위기 당시에는 선진국들의 경기가 좋아서 우리의 수출이 늘어날 수 있었으나 이번에는 전 세계가 위기를 같이 겪고 있어서 수출이 늘어나기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 우리는 외부의 간섭을 받을 필요가 없이 독자적인 정책을 펴나갈 수 있다. 따라서 금리를 대폭 인하하고 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하여 기업들이 자금난으로 도산하지 않도록 하며, 재정지출이나 부동산대책 등 경기부양 조치를 적기에 실시하여 내수 진작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적극적인 정책을 추진해 나간다면 10년 전 외환위기 때에 비해 덜 어렵게 경제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외 경제전문가들에 의하면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경제위기는 빠르면 1년, 늦어도 2, 3년 이후에는 극복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내년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금년의 4.4%보다 다소 하락한 3.6% 수준으로 전망하고 있는데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에 비하면 경기침체의 정도는 훨씬 약하다고 볼 수 있다. 정부의 선제적이고도 과감한 정책추진과 경제주체들의 협력과 고통분담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청된다.

김병일(김&장 법률사무소 상임고문·전 공정거래위 부위원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