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예·적금 줄줄이 깬다…4개월새 보험해약 72조원

직장인 황모(30)씨는 최근 20개월 가까이 들었던 적립식 예금적금을 깼다. 주가폭락으로 펀드가 반토막 난데다 대출이자가 치솟아 당장의 생활비가 필요해서다. 5개월만 더 넣으면 50만원 이상의 이자수익을 받을 수 있지만 중도 해지하면서 받은 이자는 겨우 3만원. 황씨는 "3개월 동안 적금을 넣지 못해 해약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금융시장의 끝없는 추락으로 서민경제가 파탄 위기에 몰리고 있다. 노후를 대비한 보험이나 예·적금 등 금융상품을 중도에 깨는 '생계형 해약'이 크게 늘고 있다.

◆발등의 불부터 끄자=김모(47·중구 대신동)씨는 5년전 노후대비용으로 가입했던 월 28만원짜리 변액보험(위험보험료 등을 뺀 나머지 금액을 주식과 채권에 투자하는 상품)을 지난달 해약했다. 올들어 자신이 운영하는 페인트 가게의 수입이 절반으로 줄다 보니 당장 목돈이 들어가는 보험부터 손을 대게 된 것. "아이들의 학원을 반으로 줄이고 외식도 자제했지만, 수입에 비해 고정적으로 나가는 보험료 부담이 컸다"고 했다.

지난 8월 수성구의 한 아파트에 입주한 박모(39)씨는 치솟는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겁나 자신과 아내 앞으로 들어뒀던 종신보험을 며칠 전 해약했다. 그는 "보험료 원금 1천여만원을 받아 담보대출의 일부를 갚았지만 앞으로 금리가 더 오를 것 같아 불안하다"고 했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국내 영업 중인 20여개 생명보험사의 지난 4~7월 보험해약 금액은 72조4천49억원. 지난해 4~7월의 60조5천901억보다 11조원이나 급증했다. 특히 노후를 대비한 퇴직보험, 퇴직연금의 해약은 7월 한 달 동안 2조471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천145억원이나 많았다. 올 들어서는 지난 3월 이후 조금씩 떨어졌던 보험 해약이 7월부터 다시 급증했다. 한 생보사의 김모 부장은 "해약하려는 사례가 속출해 대책마련에 나섰지만 '백약이 무효'"라고 했다.

◆쪽박 찬 인생=주식이나 펀드 투자에 손을 댔다 빚더미에 나앉는가 하면 사채에 손댔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이자 때문에 인생을 망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올 12월 결혼식을 올릴 예정인 김모(28)씨는 지난 1월 5천만원을 주식에 투자했다 결혼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김씨는 "여러 곳에 분산투자해 안전할 줄 알았는데, 주식시장이 급랭하면서 원금의 30%도 못 건지게 됐다"며 "손해를 만회하겠다고 끌어쓴 대출금까지 다 까먹어 파산 지경"이라고 했다.

퇴직금과 저축 등으로 퓨전 음식점에 투자했던 이모(33·여)씨는 순식간에 '도망자' 신세로 전락했다. 가게가 망하면서 돈을 모두 날린 이씨는 7개월 전 취업 밑천이라도 만들겠다며 사채를 끌어쓴게 화근이 됐다. 요즘은 가족들과 연락도 끊은 채 남구의 한 원룸에서 숨어지내고 있다. A씨는 "딱 한 달만 쓰고 갚자고 빌린 300만원이 고리가 붙어 1천만원을 넘었다"며 "방세까지 밀려 채권자가 들이닥칠까 달아날 준비만 하고 있다"고 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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