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3시 대구 동구 신암1동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강당. 33㎡(10여평) 남짓한 공간에 50여명의 관객들이 모여 앉아 스크린을 쳐다보고 있었다. 불 꺼진 강당에는 이따금 '까르륵' 하는 여성들의 웃음소리만 들릴 뿐, 모두가 숨을 죽였다. 이윽고 관객 모두가 기다리던 영화 '경계를 넘어 길이 되다'가 상영되기 시작했다.
결혼이주여성들이 자신들이 겪은 진솔한 한국 생활상을 카메라에 담아 직접 연출·편집까지 해 만든 영화가 관객들에게 첫선을 보였다. 이 영화는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영상동아리에서 활동하는 결혼이주여성 8명이 7편의 콩트를 묶어 만든 45분짜리 필름이다.
영화에는 한국 가족들과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자신들의 소소한 일상부터 우리 사회가 이들을 바라보는 편견 어린 시선까지 다양한 주제가 담겨 있다.
22개월 전 한국으로 시집온 필리핀 출신 피델라(28)씨. 만삭의 몸으로 출연·연출·편집까지 한 그는 '시댁가는 길' 상영을 앞두고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영화 상영 내내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초조해 했다. 피델라씨는 "남들 앞에 제가 만든 영화를 보여준다는 것이 너무 쑥스럽고 떨린다"며 "임신으로 몸이 불편한데도 영화제작을 마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시댁가는 길'은 남편과 함께 경북 군위의 시댁에 가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자신의 시선으로 그린 작품이다.
스페인에서 시집온 마를렌씨가 메가폰을 잡은 '연결(Connection)'이 상영될 때는 결혼이주여성 모두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혼이주여성이 고향에 있을 때와 현재 상황을 비교해 한국인의 편견과 차별을 진솔하게 표현했기 때문. 남편 김진만(37)씨는 "영화의 기술적인 부분은 잘 모르겠지만 아내와 함께 영화를 만들면서 부부애가 더 좋아졌다"며 "아내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날 손녀 손자 손을 꼭 잡은 시부모들도 영화감독이 된 며느리를 객석에서 응원했다. 손녀를 등에 업은 김순례(57·여·대구 북구 대현동)씨는 "영화를 만든 새아기가 일이 생겨 참석을 못했는데, 대신 우리가 영화를 보려고 왔다. 며느리가 똑똑해 영화도 잘 만들었다"며 자랑했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강혜숙 대표는 "한국말만을 익히도록 강요당하는 결혼이주여성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자기 마음을 진솔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며 "이들이 우리 사회와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도록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줘야 한다"고 말했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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