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마조마하던 것이 터지고 말았다. 올해 여름과 가을 바다는 어느 해보다 맑고 고요했다. 매년 9월이면 오던 태풍도 없었고 큰 비도 없었다. 연락선은 하루 여섯번씩 들락거리고 9월 말 관광객이 이미 12만명을 넘어섰다. '이러다가 크게 한번 터지지….' 독도 사람들의 한결같은 우려였다.
대엿새 전부터 물이 꼴랑거리기 시작하더니 뱃길이 끊겼다. 거대한 파도가 바다를 갈아엎고 있다. 파도는 여느 해변과 같이 밀고 써는 것이 아니다. 사방에서 거침없이 달려든다. 물결이 썰기도 전에 다시 물결이 그 위를 덮친다.
방문을 열고 나서면 이슬비 같은 '물먼지'(먼지처럼 흩날리는 물방울)가 날아 금방 옷이 눅눅해진다. 아침나절에는 함박눈 같은 것이 선착장 위에 흩날려 눈이 오는가 하고 나갔더니 하얀 물거품이 눈송이처럼 하늘을 뒤덮었다.
이 파도가 한풀 꺾이면 관광객들은 또 독도를 만나기 위해 먼 뱃길을 달려올 것이다. 만일 독도에 처음 오는 길이라면 도착할 때까지 눈을 감을 것을 권해본다. 비단 뱃멀미 때문이 아니라 독도를 10배 즐기기 위해서다. 조바심에 창문에 붙어서 내다보거나 멀리서부터 갑판에 올라 보면 독도를 보는 감회가 그만큼 떨어진다.
독도 선착장에 내려서서 고개를 들었을 때 눈앞에 꽉 들어찬 풍광이 더 좋은 독도의 모습이다. 깎아지른 절벽과 그 주위를 둘러싼 추상형의 바위는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독도 풍경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원시의 그것이기 때문이다.
배에서 내린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카메라를 꺼내 사진 찍기에 바쁘다. 서도를 배경으로, 동도의 바위들을 배경으로, 심지어 휴대전화로 풍경을 중계하는 학생들도 보인다. 그렇게 '추억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보면 금방 떠나야 할 시간이다. 뱃고동이 길게 울면 배에 올라야 한다.
독도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배를 타고 동·서도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이다. 어떤 경우는 일주하지 않는 때도 있다. 운수소관이다. 접안장에서 배경 삼아 이미 사진을 찍었을 테지만 독도에서 처음 만나는 바위는 숫돌바위이다.
숫돌바위는 섬이 생길 당시 화산 분출물이 수축 냉각하면서 수평으로 금이 간 조면암 바윗덩이이다. 마치 굳은 시멘트덩이를 벽돌같이 쌓은 듯한 모양으로 곧 무너질 것처럼 위태롭다. 실제 2006년 가을에는 벼락이 떨어져 바위 윗부분이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숫돌바위는 석질이 부드러워 과거 독도의용수비대 시절부터 이 바윗돌에다 칼을 갈았던 데서 붙은 이름이다.
동도 접안장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뱃머리를 돌리면 정면에 마주치는 바위가 부채바위이다. 부채바위는 먼바다 쪽에서 보면 마치 부채를 펼친 형상이라고 해서 이름 붙었다. 그러나 서도 어업인숙소 쪽에서 보면 오히려 선정(禪定)에 든 부처의 형상에 더 가깝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의관을 정제한 공경대부가 동도 쪽을 바라보고 정좌한 모습이라고 하는 편이 옳다. 이래저래 독도의 바위 이름들에는 고개를 갸웃할 것들이 많다.
부채바위를 조금 지나 나지막하게 해수면에 붙은 바위는 '동키바위'(정식 명칭이 아닌 일반적인 이름)이다. 동키바위는 과거 접안시설이 생기기 전 화물을 내릴 때 쓰는 '동키'라는 도구를 설치했던 인연으로 얻은 이름이다.
그 옆의 바위는 '춧발바위'이다. 울릉도 사람들은 바다의 곶(串)과 같이 튀어나온 부분을 사투리로 '춧발'이라고 한단다. 춧발바위를 돌아 우람하게 밀고 내려오는 듯한 탱크 바위를 지나면서 위를 올려다보면 얼굴바위가 보인다. 성화 점화대 쪽에서 보면 바위모양이 꼭 투구를 쓴 사람의 옆얼굴 모양이다.
이렇듯 독도는 일주를 시작하면서부터 섬 전체가 하나의 수석이나 괴석임을 알 수 있다. 거대한 수석은 바다의 기분에 따라 얼굴을 달리하고, 햇볕의 움직임을 따라 시시각각 모습을 바꾼다. 이 웅대한 파노라마를 차마 혼자 보기가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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