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수술의 역사'를 부제로 달고 있는 이 책은 성형수술을 통해 본 의학사이며 인종문제로 본 사회사이다. 또 의학기술 발달과 사회관계에 대한 문화비평서이기도 하다.
책은 성형을 권하지도 비판하지도 않는다. 지은이 엘리자베스 하이켄은 역사학자이며 의학자다. 그는 미용 성형수술에 대한 가치판단을 유보한 채 인문학적 소양과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성형수술의 성장과정과 변화를 추적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성형수술 자체가 아니라 성형수술이 담고 있는 사회적 함의에 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 초기 성형수술은 얼굴재건
성형수술기술은 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급속하게 발달했다. 전쟁으로 인한 얼굴상처를 치료하는 '재건(再建)성형'이 성행한 덕분이다. 기술이 축적됐지만 당시 외과의사들은 '의료전문직의 품위를 해친다'는 이유로 미용성형을 경멸했다. 전쟁이 끝난 뒤 일부 의사들이 여성 재건성형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지만 대부분의 의사들과 시민들은 미용성형에 부정적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의사들은 외모에 불만을 가진 사람의 숫자가 선천성 기형이나 외상을 입은 사람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일부 야심에 찬 의사들이 재건성형을 통해 쌓은 지식과 실력, 상상력을 배경으로 미용성형에 나섰다. 특히 외과의사들은 성형전문과목을 재건성형에만 한정지을 경우 경제적으로 큰 몫을 포기해야 함을 알았다. 그러나 아직 다수의 외과의사들과 시민들은 미용성형수술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엄격했던 빅토리아 시대가 저물고 미국인(특히 여성)은 육체적 아름다움이 외적이고 독립적인 특질임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또한 인간이 미를 추구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관심, 돈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했다.
◇ 심리학은 미용성형술의 힘
미용성형은 나쁘다는 인식에 갇혀있던 외과의사들에게 힘이 된 것은 심리학이었다.
'심리학적, 혹은 정신의학적 개념으로 볼 때 열등 콤플렉스는 모호하며 단순하기조차 하다. 열등 콤플렉스는 주관적이었다. 즉 의사에 의해 진단되기 보다 환자에 의해 정의되었다.'
의사들은 기형을 구성하는 객관적인 결정요인(혹은 기준)을 만드는 대신, 환자 본인이 자신의 얼굴에 대해 어떻게 느끼느냐가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를 통해 의사들은 성형수술이라는 전문과목의 성격(재건성형이냐, 미용성형도 포함하느냐)을 규정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역할도 다시 정의했다.
시민들의 인식도 변했다. 말하자면 "내가 내 못난 얼굴 때문에 괴롭다는 데 당신이 왜 상관이냐? 내가 내 못난 얼굴을 고쳐서 잘 살아보겠다는 데 그것이 어떻게 천박한 행위냐"는 것이었다. 의사들 역시 "콤플렉스 투성이인 얼굴을 치료함으로써 사람이 건강한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면 치료해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하고 역설했다. 심리학 덕분이었다.
여기에 많은 미국의 중년여성들은 노화에 대한 문화적 규범을 바꾸는 것보다 수술로 얼굴을 바꾸는 것이 훨씬 빠르고 쉽다는 것을 인식했다. 한때 미용성형은 심약함의 상징이었으나 이제 미용성형은 자기계발, 성공을 향한 강인한 정신의 표현이 됐다.
"내가 내 얼굴을 보기 좋게 고쳐서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데 낭비한 시간과 에너지를 생각하면 억울하다. 이제 얼굴을 고칠 시간이다." -1971년 에이미 밴더빌트-
◇ 성형술은 젊은 미국인의 길
2차 세계대전 이후 획득한 경제적 부를 배경으로 1970년대, 80년대 미국의 여자들은 원하는 것을 살 수 있었다. 구매상품 중에는 더 팽팽한 얼굴, 커다란 유방, 날씬한 허벅지도 포함됐다. 특히 나이든 미국인들에게 성형은 가뭄에 단비 같았다. 미국에서 늙는다는 것은 곧 패배를 의미했다. '늙은 여자는 아무리 노력해도 늘 젊은 여자에게 밀리기 마련'이었다.
'자연은 아름다움을 주는 데 쩨쩨하기 그지없지만 외과 의사의 칼은 그 결핍을 해결해 준다. 폭탄으로 찢겨나간 군인들이 성형외과라는 새로운 과학에 의해 마술처럼 얼굴을 되찾아 일상에 복귀한다. 세월의 손에 주름진 여성의 얼굴을 다시 탄력 있고 또렷하게 만들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주민에게도 성형은 피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유대인의 코, 아시아인의 실눈, 흑인의 코와 입술은 늘 성형의 대상이었다. 이들은 앵글로색슨계 백인을 닮고 싶어했다. 이들이 미국 사회의 주류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유대인의 코 성형, 아시아인의 쌍꺼풀 수술, 흑인의 코와 입술 수술은 미국의 주류가 되기 위한 과정이었다.
성형을 원하는 아시아인들은 미국사회가 아시아인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시아인의 전형적인 실눈이 '재미없고 즐길 줄 모르는 인간형' '책벌레' '졸리고 지루한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또 콧날이 납작한 것은 성격이 나약하고 의지가 박약하다는 느낌을 준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오늘날에는 한국 일본 등에서도 성형수술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1970년대, 80년대까지만 해도 미용성형수술은 미국문화의 본질적 특성과 연결돼 있었다. 거기에는 개인적 변모와 희망, 재창조와 재발명이라는 아메리칸 드림이 각인돼 있었다.
487쪽, 2만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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