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재산이 말라가고 있다. 쌈짓돈처럼 아끼다 목돈 마련을 위해 넣었던 주식은 반토막이 났고, 은행 대출받아가며 샀던 아파트는 수천만원의 마이너스 프리미엄이 붙었다. 뭉텅뭉텅 불어도 시원찮을 판국에 있던 재산을 까먹고 있는 사람들.
"언제쯤 볕들날이 있을까, 과연 그 날이 있긴 한 것일까."
물음을 던져보지만 들리는 것은 도처에 곡소리뿐이다. 거기다 불황을 이유로 직장에선 감봉과 감원을 준비중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나?
◆주식은 반토막도 선방
대구의 중견기업 부장급인 정모(45)씨. 지난 8월 1일 코스피지수가 1,600선일 당시 포스코 주식을 주당 53만1천원에 50주 매입했다. 어렵게 모은 돈과 아내에게 "지금이 바닥"이라며 사정해서 마련한 돈 2천500만원을 털어 주식을 산 것. 당시 펀드는 별로 좋지 않던 상황이어서 개별 종목에 접근했고, 증권사 추천사이트들마다 포스코를 자랑해 큰 망설임없이 샀다. 떨어져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주식이니 큰 문제가 있겠느냐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3개월이 되어 가는 요즘 포스코 주가는 반토막이 더 났다.
펀드에 들어갔던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대구 달서구에 사는 주부 김모(40)씨. 금싸라기같은 900만원을 적립식 펀드에 넣었다가 원금을 절반 가까이 까먹고 있다. 김씨는 "작년 2월부터 아이들 교육비를 준비하려고 매달 30만원 이상씩 1천만원가량을 적립식 펀드에 넣었는데 지금 40% 정도의 손실을 보고 있다" 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지난 24일 종합주가지수(코스피지수)는 1,000선이 무너지며 938.75를 기록해 작년 말보다 50.5% 폭락했다. 이후 900선도 위협받다가 28일 막판 폭등에 이어 29일 오전에도 상승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지만 주식시장에서의 공포감은 여전하다. 10개월 사이에 반 토막이 났다. 주식 투자를 통해 자산을 늘리려던 개인들은 바닥 없이 추락하는 증시 앞에서 눈물을 머금고 손실을 감수하며 외국인의 투매에 합류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직접투자보다 안정적인 자산 운용으로 여겨졌던 펀드 또한 예외가 아니다. 내 집이나 자녀 교육비 마련, 노후 대비를 위한 펀드가 세계 금융위기의 파고에 속절없이 휩쓸리고 있다.
금융감독원과 펀드평가사인 제로인 등에 따르면 이달 10일 기준으로 29개 내집마련장기주택 주식형 펀드의 지난 1년간 평균 수익률은 -33.76%나 됐다. 15개 어린이 펀드는 최근 1년간 33.65%의 손실을 냈다. 302개 개인연금펀드와 퇴직연금펀드의 평가손실액은 지난 13일 기준으로 4천586억원에 달했다.
◆이자도 제로 시대
물가가 상승하면서 실질금리는 제로 수준에 근접해 있다. 8월 예금은행이 적용한 저축성 수신의 평균 금리는 연 5.91%로, 여기에서 같은 달 물가 상승률 5.6%를 뺀 실질금리는 0.31%에 그쳤다. 이자에 붙은 소득세(세율 15.4%)를 빼면 사실상 제로 금리인 셈이다. 주가가 폭락하고 있어 예금을 뺀다고 해도 투자할 곳을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예금을 빼서 그나마 안정적일 것으로 평가받던 우량주나 금융회사들이 적극 권유하는 주식 펀드에 넣었다가 감당하기 어려운 손해를 감수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부동산 불패는 옛말
2005년 대구 수성구에서 2억7천만원짜리(110㎡) 신규 아파트를 분양받은 강모(40)씨. 지난 3월 입주를 했지만 프리미엄이 붙을 것이란 당초 기대와는 달리 현재 가격은 분양가보다 2천만~3천만원 정도 아래에서 형성되고 있다. 월 소득 400만원 정도에 이자만 50만원을 낸다. 당초 입주 후 프리미엄을 받고 처분한 후 10년 정도 된 좀 더 넓은 아파트를 구입해 이사하려 했던 그는 요즘 "답이 안 나온다"고 하소연했다.
재산의 거의 대부분이 아파트에 잠겨 있는 서민들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재산을 불리려고 아파트 구입을 시도했다가 막차를 타는 바람에 해약도 할 수 없는 지경이 대부분. 해약을 해도 계약금과 기존 중도금 이자를 모두 부담해야만 하는 안타까운 국면에 처해 있다.
정부가 투기지역을 풀어 간접적으로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완화하고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하는 대책을 내놓았지만 부동산 경기의 침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대구의 미분양 물량 2만1천가구가 해소되기 전에는 부동산 경기가 다시 살아나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어서 서민들의 마음은 더욱 불안하기만 하다.
◆감원·감봉도 대세인가
급격한 원/달러 환율 상승과 경기 침체 등으로 불황에 직면한 기업들은 벌써부터 감원과 감봉을 얘기하고 있다. 제조업 경우 키코 피해를 본 기업들 중심으로 구조조정설이 파다하게 퍼지고 있다. 대구에서 키코에 관련돼 있는 한 기업 간부(50)는 "회사가 워크아웃을 준비하면서 감원설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장기침체를 걷고 있는 건설업은 직격탄을 맞은 상황이다. 조만간 워크아웃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한 건설업체는 이미 3개월째 급여 지급이 중단된 상태다. 잘 나가던 증권업계도 증시 폭락 속에서 구조조정설이 나오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곽수종 수석연구원은 "주가 하락과 소득 감소 등으로 자산 디플레이션이 지속하면 소비나 기업 투자에 영향을 미치며 경기가 더욱 빠르게 얼어붙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춘수기자 zapper@msnet.co.kr
▨ 자산디플레 악화=금융시장의 상황이 갈수록 나빠지면서 자산 디플레이션 현상이 악화되고 있다. 대구시내 한 증권사 객장에서 개인투자자가 바닥 없이 추락하는 증시그래프 모니터를 허탈한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구미 '탄반 집회' 뜨거운 열기…전한길 "민주당, 삼족 멸할 범죄 저질러"
尹 대통령 탄핵재판 핵심축 무너져…탄핵 각하 주장 설득력 얻어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
尹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 임박…여의도 가득 메운 '탄핵 반대' 목소리
이낙연 "'줄탄핵·줄기각' 이재명 책임…민주당 사과없이 뭉개는 것 문화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