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미식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존을 위해서라고 하더라도 눈과 코와 혀의 즐거움을 빼버리고 단순히 영양만 캡슐로 섭취한다는 것은 얼마나 심심하고 무료한 일인가.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음식으로 위를 채우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사람은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를 말해봐라. 그러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 줄 수 있다." 세계 미식가의 시조인 브리야 샤바랭의 유명한 말이 아니더라도 음식은 그 사람을 구별 짓는 중요한 잣대 중 하나가 되었다.

음식은 자연과 과학과 역사와 문화의 산물이다. 우리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자연에서 채집하거나 경작하거나 길들인 것들을 변형한 것이다. 이 복잡한 과정에 참여하지 않는 학문 분야가 없을 지경이다.

패스트푸드는 그런 의미 있고 중요한 과정을 몽땅 생략한 것이다. '슬로푸드 운동'은 맥도날드가 로마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데서 출발했다. 그것도 물리력이 아닌 미식가들의 다양한 입맛을 지켜낸다는 방법으로 시작했다.

미식가라고 하면 왠지 고급스럽고 사치한 취미 생활을 즐기는 사람으로 보이지만 그냥 좋은 음식을 찾아 먹고 즐기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꼽는 좋은 음식의 첫째 조건은 무엇보다 식품의 원래 특징을 살린 자연성을 지닌 식품이다. 음식이 갖는 시'공간적 특성, 즉 지역성과 계절성을 가진 음식이다. '身土不二(신토불이)'가 바로 슬로푸드 운동과 맥을 같이한다.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슬로푸드 운동 국제대회 '2008 살로네 델 구스토'에서 카를로 페트리니 회장이 최근 국제적 금융위기에 대해 느리게 사는 것만이 해법이라고 주창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소비 사회가 사람들을 단순한 소비자로 몰아세우고 있다"고 말하고 늦추는 생활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올해만도 우리는 먹을거리를 두고 내내 시비에 휘말렸다. 그러면서 먹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런데 지금의 금융위기조차 우리의 먹을거리 문제와 뿌리가 같다니 이젠 정말 생존을 위해 음식을 선택해야 하는 시대가 다시 온 것인가. 미식가의 흉내라도 내보고 싶다. 금융위기 해결이란 거창한 목표는 아니라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서.

이경우 논설위원 the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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