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도심 재창조] ③사람이 떠나고 있다

"밤이면 포장마차 빼곤 붉 밝힌 곳 찾기 힘들어"

▲ 일본 오사카성 인근의 카라호리토리 시장. 아케이드와 깨끗한 환경, 다양한 물건들은 일대 주민들에게 생활의 불편을 거의 느끼지 않도록 해주고 있다.
▲ 일본 오사카성 인근의 카라호리토리 시장. 아케이드와 깨끗한 환경, 다양한 물건들은 일대 주민들에게 생활의 불편을 거의 느끼지 않도록 해주고 있다.

도심도 사람이 사는 공간이다. 살기 좋아야 하고 살 만한 곳이어야 한다. 하지만 대구 도심의 정주 인구는 계속 줄고 있다. 살기 불편하기 때문이다. 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살기 편한 여건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취재팀은 지난 23, 24일 이틀간 하루 8시간씩 자전거를 타고 1차순환선(동인네거리-삼덕네거리-계산오거리-태평네거리) 내부를 속속들이 들여다봤다. 생활 속에 꼭 필요한 편의점, 슈퍼마켓, 세탁소를 일일이 지도에 표시해 보았다. 아쉽게도 교육시설은 종로초교가 유일했고, 학원이라야 성인을 위한 외국어 학원이 대부분이어서 표시하기가 마땅찮았다. 도심 속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썰렁한 도심 골목

북성로2가 한 주민은 살기가 어떠냐고 묻자 "밤에 과자 한 봉지 사러 큰길까지 나가본 적 있느냐"며 짜증부터 냈다. "밤이면 포장마차를 빼고 불 밝힌 곳을 찾기가 힘들다"고도 했다. 동네 슈퍼는 인근 공구 상가가 문을 닫으면 일찌감치 셔터를 내린다. 세탁소도, 이발소도 마찬가지다.

24시간 편의점은 동성로 일대(공평동, 동성로2·3가, 사일동, 삼덕동1가)와 중앙로, 국채보상로 주변을 빼고는 찾기조차 힘들다. 도로로 나뉜 블록 깊숙이 살고 있는 사람들은 생필품 하나 구입하기 위해 많은 발품을 팔아야 한다.

중앙도서관 맞은편과 진석타워 뒤쪽으로 다가구주택, 원룸, 빌라가 밀집돼 있지만 세탁소는 고작 2곳뿐이었다. 아진맨션 뒤편이나 삼덕교회 부근에서는 슈퍼마켓 찾기도 힘겨웠다.

약전골목 일대는 해가 지면 다니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 희도맨션, 신성 미소시티 등 아파트도 있지만 밤이면 인적이 뚝 끊어진다. 머리를 깎거나 목욕탕에 가려면 동성로 쪽으로 나가야 한다. 경상감영공원 인근 향촌동도 위락시설만 즐비할 뿐이다.

대구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동성로 일대는 이미 사람 살기 힘든 곳이 됐다. 술집, 레스토랑, 카페, 가게 등이 밤늦게까지 불을 밝히고 있지만 정주 인구는 찾기 힘들었다. 거의 유일한 다가구 거주지였던 삼덕맨션은 2년 전부터 쓰레기와 폐기물들이 쌓이는 폐가로 방치되고 있다.

◆사람 살기 좋은 곳으로

도심은 주거공간이면서 상업·업무·휴식·문화공간이다. 살기 좋은 동네가 되려면 이를 한곳에서 해결해야만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과거 대구읍성 내부는 도심의 다양한 기능을 제공했기 때문에 사람이 크게 붐볐지만 교통여건이 발달하고 도시가 확대되면서 쾌적한 정주여건을 외곽지에 빼앗겼다. 이를 되살려야 도심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주거 중심의 아파트보다는 연령별 인구 분포, 정주 패턴 등을 고려해 주상복합형 단기 체류공간 개발도 도심 활성화를 위한 필요조건이다. 대구대 도시·지역계획학과 홍경구 교수는 "상업 종사자, 도심을 찾는 젊은 계층, 타지역민의 인구 유입을 위해서는 업무용 오피스텔, 원룸, 오피스에다 상가, 문화가 버무려진 복합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심 속에서 보존지역과 개발지역을 선택한 뒤 민·관이 함께 집중적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도시계획 및 개발 관련 업체인 한도엔지니어링 박원회 대표(영남대 도시공학부 겸임교수)는 "도심은 필지가 세분화된 데다 비싼 땅값, 용도지역 제한 등으로 개발이 어렵다"며 "도심 내부 여건을 민·관이 함께 샅샅이 조사한 뒤 보존과 개발을 위한 각종 세제지원, 접근로 개발 등과 필요한 행정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 日도심 빌딩속 섬같은 마을…정주여건 개선노력 돋보여

도심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옛날부터 있었지만 최근에는 지역 특성에 맞춰 다양한 방법으로 정주여건을 바꾸는 시도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경기도 성남문화재단이 2006년부터 3년째 진행하고 있는 '우리 동네 문화공동체 만들기' 사업은 전국적으로 주목받는 사례. 첫해인 2006년에는 성남시청 인근 태평4동에서 '동락태평하세'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어린이 기획창작단, 예술장터, 화단시상식, 골목길 영상제, 움직이는 사진관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주무대가 된 샘터길은 활기를 완전히 되찾았다. 지난해에는 은행2동 주공아파트에서 벽화그리기, 공연과 영화감상, 바비큐파티 등을 진행하며 이웃 간 정을 두텁게 한 '풀장환상' 프로젝트가 세간에 화제를 낳기도 했다. 올해는 공단지역인 상대원동의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문화예술을 동원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개발의 대상에서 한걸음 비켜 있는 마을들을 보다 살기좋게 만들고 문화예술의 향기를 담으려는 프로젝트들은 전국으로 급속히 번져나가고 있다.

일본의 경우 도심 속 마을이라도 원형을 보존하는 가운데 정주 여건을 개선해나가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오사카 도심 한가운데인 우메다(梅田)역에서 지하철 한 정거장거리인 나카자기초(中崎町). 큰길을 둘러싼 대형 건물들의 뒤로 들어가니 조용한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이층 목조에 처마 높이를 똑같이 맞춘 마을은 메이지 시대인 1890년대에 만들어진 외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안쪽으로 들어서자 어린이 놀이터와 공원, 골목안 공용주차장까지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의 조건들을 갖추고 있었다. 마을 가운데에는 작지만 깔끔한 재래시장에 아케이드를 조성해 저녁까지 영업을 하고 있었다. 채소와 해산물, 반찬거리를 사는 것은 관광객이나 쇼핑객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었다. 'since 1898'이라는 주택의 낡은 표시가 사실임을 깨닫게 해줬다.

오사카성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마츠야마치(松屋町) 역시 빌딩 숲으로 둘러싸인 섬 같은 마을이었지만 인근의 고층아파트나 빌딩보다 더 살기 좋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깨끗한 거리, 과거의 원형을 유지한 채 현대화된 주택과 건물들, 깔끔한 상가의 모습은 방문객에게조차 편안함을 주었다. 우리처럼 떠들썩한 프로젝트는 없지만 주민 모두가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최선을 다해온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 1차 순환선(동인네거리-삼덕네거리-계산오거리-태평네거리) 내 편의시설 현황표를 보면 도심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 동성로에서 빨래를 맡길 세탁소는 찾기가 불가능하지만 사우나, 목욕탕은 큰 건물마다 있다. 남성들을 위한 이용소는 드물지만 여성들이 몰리는 미용실은 중구 전체의 3분의 1이 넘는다. 하루 자고 가는 숙박시설은 많지만 자녀 양육에 필요한 보육시설은 단 두 곳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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