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0월의 마지막 밤 ]중년들의 쉼터(1)

추억 가득한 마음의 고향

1957년 문을 연 이래 51년 동안 대구시민들의 정서적 자양분 역할을 해 온 클래식 음악감상실 하이마트는 젊은이들로 넘쳐나는 대구 중심(대구백화점과 중앙도서관 사이)에 있다. 길을 가던 10대, 20대에게 물어보면 어김없이 전자제품 유통업체 이름이 대답으로 돌아온다. 독일어로 '고향'을 의미하는 하이마트(Heimat)는 LP레코드판 자체가 생소한 MP3세대에게 낯선 이국땅이지만 중장년층들에게는 추억이 담긴 마음의 고향이다.

하이마트를 개관한 사람은 1969년 작고한 김수억씨. 음악애호가였던 그는 트럭에 음반을 가득 싣고 한국전쟁 당시 서울서 대구로 피난온 것이 계기가 돼 옛 대구극장 맞은편에 음악감상실을 열어 83년 현 위치로 이전했다. 마땅한 문화 공간이 없었던 시절, 많을 때 하루 1천500여명이 다녀갔다. 문턱이 닳아 없어지고 빈자리가 없어 손님을 돌려 보낼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다양한 음악 기기가 보급되고 팝과 가요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손님들의 발길은 많이 줄었지만 하이마트가 걸어온 역사에는 3대를 내려온 한 가족의 음악사랑이 녹아 있다. 아버지의 뒤를 딸 김순희(62)씨가 이었고 지금은 프랑스에서 음악을 공부한 아들 박수원(37)씨와 며느리 이경은(34)씨가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고 있다.

반세기 이상 대구시민들 곁을 지켜온 만큼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은 주로 오래된 단골이거나 추억의 한자락을 공유하고 있는 이들이다. 가을빛 좋은 오후 하이마트 문을 열고 들어가자 '베토벤 교향곡 7번'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차를 마시며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곳에 중년신사가 눈을 지긋이 감고 선율에 몸을 맡기고 있다. 실례를 무릅쓰고 말을 걸었다. 31년만에 하이마트를 다시 찾은 이헌동(51'동구 지묘동)씨였다. "오전에 등산갔다 음식점에서 들러 점심을 먹는데 TV에서 클래식공연을 중계해 주더라구요. 먹고 살기 바빠 잊고 지냈는데, 77년 몇번 하이마트에 온 것이 기억나서 다시 왔습니다"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90석의 좌석이 있는 감상실 안으로 들어가자 2평 남짓 전축실이 눈에 들어왔다. 김수억씨의 숨결이 초상화를 통해 아직까지 전해지고 있었다. 한쪽 벽면에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는 LP음반들이 가득했다. 지금은 구하기 힘든 것들이다. 김순희씨가 가장 애정이 가는 음반이라며 한장을 꺼냈다. 헨델 메시아 하이라이트 부문만 모은 것이었다. "아버지가 헨델 메시아를 유난히 좋아했습니다. 헨델 메시아 전곡이 실린 음반은 아버지 무덤에 넣어 주었기 때문에 이 곳에는 없습니다"고 설명했다.

이곳에서는 5천원만 내면 차를 마시고,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요즘 5천원으로 이만한 여유와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곳이 있을까?

#클래식 음악감상실 '하이마트'

하이마트의 가장 큰 자산은 오랜 세월 동고동락 해온 벗들이 많다는 것. 40여년 인연을 맺고 있는 음악감상모임 '유터피', '에스텔라'는 물론 '대구악우회'와 30~60대 주부들이 주축을 이룬 '소향회'와 '비바체', 직장인들로 구성된 '뮤즈' 등이 정기모임을 갖고 있다. '소향회'는 매주 월요일 오전, '비바체'는 첫째, 셋째 금요일 오전, '뮤즈'는 매주 토요일 오후 모여 음악을 나누고 있다. 이와함께 청구중학교가 15년째 매월 셋째주 토요일 오전 음악수업을 하고 있다.

과거와 달라진 풍경을 엿볼 수 있는 모임도 있다. 아마추어 음악애호가들이 모인 '피아노 러브'와 '앤드 피아노'는 회원들이 직접 연주를 하고 음악도 감상하며 친목을 다지고 있다. 또 인터넷동호회도 결성돼 정기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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