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공항에서 대만(공식 명칭은 중화민국)까지는 비행기로 2시간 거리에 불과하다. 1992년 중국과 국교를 맺기 전만 해도 옛 중국 문물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기에 적잖은 관광객이 찾았지만 이후 10년 넘게 대만은 그다지 각광받는 관광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대만 여행상품이 개발되면서 대만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고, 대만만이 간직한 고유의 문화와 자연을 보려는 발길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끝이 없을 정도로 긴 스쿠터 행렬이 거리를 가득 메우는 도시 타이페이. 워낙에 집에서 음식을 해먹지 않는 탓에 거리 곳곳에 각양각색의 음식점이 넘쳐나는 곳. 대만은 아열대 기후다. 일년 내내 온화하지만 시원하고 쾌적한 가을이 여행하기엔 가장 좋은 계절이다.
◆세계4대 박물관 중 하나 '국립고궁박물관'
여행을 하면서 박물관을 꼭 들르게 되지만 정작 마음 속에 품고 돌아오는 박물관을 만나기는 그리 쉽지 않다. 세계적 박물관을 찾더라도 그저 웅장한 규모와 다른 사람들이 매겨놓은 가치 때문에 감동받았다고 혼자 생각할 뿐 실제 출입문을 돌아나오며 한번쯤 뒤돌아보거나 며칠 뒤 문득 떠오르는 아쉬움에 한숨짓기란 결코 쉽잖다. 기자에게 고궁박물관을 돌아본 90여분의 시간은 너무 짧아 마치 꿈을 꾼 느낌이 들었다. 진열장 속에 차려진 수십만 가지 진수성찬을 그저 지나치는 느낌은 어떨까? 맛은 커녕 음식의 내음조차 맡아보지 못하고 돌아오면 과연 그 음식을 접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박물관은 보는 곳이 아니라 듣는 곳이다. 비록 유리 속에 갇혀있을지언정 작품 하나하나가 들려주는 수백년, 수천년 전의 역사를 듣지 않고는 감히 박물관을 가봤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 그래서 고궁박물관은 더욱 아쉽다.
장개석이 국공내전을 피해 대만으로 옮겨오면서 자금성에서 가져왔다는 60만점의 보물들은 중국 5천년역사의 화룡점정만을 끌어모은 것이었다. 루브르박물관에 모나리자가 있다면 고궁박물관에는 '비취옥 배추'가 있다. 사람들이 하도 많아 제대로 구경조차 하기 힘들지만 비집고 들어가 기어코 사진 한 장을 건졌다. 사전에 박물관측의 촬영 허가를 받았지만 이를 모르는 현지인들은 카메라를 들이대는 기자에게 '촬영 금지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자꾸 어깨를 두드려댔다.
청동기부터 진'한시대로 이어지는 문물이 그득한 3층과 수'당시대부터 명'청조로 이어지는 도자기와 조각 작품들로 빼곡한 2층 전시관. 그 많은 작품들을 한꺼번에 전시할 수 없어서 3~6개월 단위로 전시작품을 바꾼다고 하니 다음에 찾아가면 전혀 다른 작품들이 흘러간 세월의 숱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타이루거(太魯閣) 협곡
타이페이에서 기차를 타고 2시간30분쯤 남동쪽으로 달려가면 웅장한 동부산맥과 태평양 사이에 위치한 도시 화리엔(花蓮)이 나온다. 비행기로는 1시간도 채 안걸리는 거리지만 대만의 시골풍경을 보고 싶다면 가는 길에는 기차를, 오는 길에는 비행기를 권한다. 다시 이곳에서 버스로 한 시간쯤 달려가면 타이루거 협곡을 만날 수 있다. 협곡을 가로지르며 끊어질 듯 이어지는 중횡고속도로는 이곳의 주요 교통로. 대만에 해발고도 4천미터가 넘는 고산지대가 있다는 사실도 놀라울뿐더러 사람의 발길조차 닿기 힘든 이곳에 이런 도로를 뚫었다는 사실 역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협곡은 여행자에게 말을 건넨다. 수십미터 발 아래 대리석을 깎아내며 흘러가는 탁류는 그 바닥을 쉬이 드러내지 않는다. 수십층짜리 빌딩이 깎아지르는 듯 솟아있는 양쪽 절벽을 보노라면 차라리 길 위에 누워버리고픈 심정이다. 계곡바닥 저쪽으로 그나마 가장 늦게 모습을 드러낸 대리석은 푸른 빛이 도는 뽀얀 살결을 자랑한다. 거칠게 휘몰아치는 계곡의 탁류 속에 매일 조금씩 살점이 떨어져나가지만 그것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어린 대리석의 숙명이다. 수천년 세월이 흘러 이제는 풍상의 더께가 내려앉은 계곡 중간 부위는 회색빛으로 변해있다. 아직은 주변과의 타협을 거부하지만 더 이상 대리석의 자만스런 자태는 남아있지 않다. 뒷목이 뻐근할 정도로 고개를 쳐들고 윗쪽을 바라보면 그곳에는 나무와 풀, 꽃이 있다. 그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대리석은 자연과 조화를 깨닫게 된 것일까?
타이루거 협곡을 지나며 두세 차례 산책로를 만날 수 있다. 가이드는 이렇게 말했다. "70대는 걸어서 30분, 20대는 1시간이 걸립니다." 타이루거는 외로운 영혼에게 많은 이야기를 건넨다. 귀를 열고 닫음은 여행자 몫이다.
◆예류(野柳) 지질공원
타이루거가 거칠다면 예류는 예쁘다. 타이페이에서 자동차로 한시간쯤 북동쪽으로 달리면 바닷가에 닿는데 바로 예류 지질공원이 있는 곳이다. 예류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다.
먼 옛날 바닷속에 잠자던 지형들이 땅 위로 솟아오른 뒤 바람과 햇볕의 지리한 손놀림 속에 기암괴석으로 깎이고 다듬어졌다. 그다지 넓지않은 곳이지만 지질학의 박물관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만큼 다양한 지형들이 자리잡고 있다. 위로 둥그렇게 솟아오른 벌집바위 중 하나를 '대장금'이라고 부른단다. 대만에서 대장금이 방영되던 때, 북적이던 거리가 한산해질만큼 인기를 끌었고 그나마 중국과의 국교를 맺은 뒤 들끓던 반한 감정을 누그러뜨리는데 일등공신이었단다. 곱게 빗어올린 여인의 뒷모습을 떠올리게 하지만 사실 대장금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예류에는 천년여왕이 있다. 침식에 강한 암질이 머리를 차지하고 무른 사암은 햇볕과 바람에 깎여 가늘고 좁아지면서 마치 사람의 머리와 목을 떠올리게 한다. 고대 이집트 여왕이 옆모습을 닮았다해서 '클레오파트라의 머리'로도 불린다. 나이는 4천년 정도. 대만의 지형이 매년 2~4mm씩 바다 위로 솟아나는 점을 감안해서 매겨본 여왕의 나이라고 한다. 지금은 너무 목이 가늘어진 것이 문제다. 행여 부러질새라 근처에 가지도 못하고 바위를 만지는 것은 엄금이다. 10년 뒤에는 태풍 때문에 부러질지도 모른단다. 그래서 인공적 조치를 취해서 목을 보호할 것인지, 그냥 자연의 섭리에 맡겨둘 것인지 투표로 정할 예정이라고. 현재 목둘레는 158cm, 지름은 50cm 정도에 불과하다. 천년여왕의 수명도 이제는 다한 것일까?
글·사진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