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치앞이 안보이니…" 내년 경영계획 손놔

기업 간부들 '초긴축' 원칙 외엔 구체안 짜기 곤혹

"두 달 남은 올해는 근근이 버텨내겠지만 내년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나…."

경제난에 따른 국민들의 절망감이 산업현장 곳곳에서 넘쳐나고 있다. 이제 곧 11월, 기업체들이 올해 경영실적을 마무리하고 내년도 운영계획을 확정할 시기지만 경기 예측이 불가능해지면서 하루살이식 경영이 늘고 있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뛰어 넘어야 하는 경영인들과 근로자들은 새해가 다가온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넘어 공포감마저 느끼면서 일손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포항공단 한 대기업에서 경영기획 실무를 책임지고 있는 A씨는 지난 주말까지 끝내야 했던 내년도 운영계획 수립 업무를 손도 대지 못한 채 미뤄두고 있다. 각 부서별·팀별로 제출한 계획을 종합 검토해 전사적인 운영지침을 짜야 하지만 실행부서에서 계획서 제출을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A씨는 "기초 근거 자료가 있어야 내년 살림살이 계획을 세우겠는데 믿을만한 백데이터(자료수치)가 하나도 없어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를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대기업 B사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 경영기획 담당 김모 부장은 "예상수주액과 매출액, 인력운용, 인건비 등 경영 계획의 기본적인 지표들을 전혀 종잡을 수 없는 상황에서 세우는 경영계획이 얼마만큼의 실현성이 있는가하는 부분을 따져보면 현재 수립중인 내년 운영목표는 사실상 신뢰도가 거의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또 C사의 박모 부장은 "경영층에서 내년도 예산안을 제출하라고 해서 억지로 내기는 했는데 '막연하게 30% 절감'이라고만 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담지 않았다"고 했다.

대기업들의 사정이 이런 지경이고 보면 중견·중소기업들의 형편은 더욱 딱하다. 올해 예상 매출액이 1천억원대인 포항공단 한 중견기업 대표는 "같은 주제로 하는 회의인데도 어제 토론 내용과 오늘 내용이 정반대인 상황에서 경영 예측이 과연 가능한 것이겠느냐"고 하소연했다.

다른 한 중소기업 사장은 '극한적 원가절감'과 '초긴축 경영'이라는 두 가지 원칙만 세워 놓았을 뿐 세부계획은 세우지 않기로 하는 대신 '시나리오 경영'을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시나리오 경영'이란 몇 가지 사정을 가정해 놓고 각각의 경우에 맞춰 그때그때 임기응변식으로 대처하겠다는 것. 사실상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식의 무계획 경영'을 하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일단 회의·출장·회식 등 간접경비는 전액 삭감하다시피 하고 내년초까지 경기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을 경우 설날을 전후해 본격적인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는 방안을 검토중이어서 전체적인 외형이 지난 1998년과 상당 부분 닮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포항·박정출기자 jc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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