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새도 힘겹다. 작은 새들은 아예 바위틈에서 두려운 눈망울만 굴리고 있다. 덩치 큰 갈매기도 참매도 불어닥치는 바람을 헤쳐나가기는 버겁다. 바람에 맞서 날갯짓을 해보지만 밀리기만 하다가 왔던 길로 방향을 바꾼다.
일주일간 밀어닥친 파도는 말을 앗아갔다. 선가장을 넘나드는 물결은 사람들을 방안에 꽁꽁 묶어뒀다. 종일 천장만 보다가 수돗가에서 마주쳐도 서로 멀거니 쳐다만 볼 뿐이다. 누가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고, 무슨 말이 필요할까.
단 이레 동안의 파도에도 할 말을 잃는데, 길게는 460만년 동안 밀려온 파도에도 꿋꿋한 독도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독도는 그악스레 달려드는 파도에, 떼내 줄 것 다 내주고 씻어낼 것 다 씻어 냈다. 육탈(肉脫)하고 겨우 뼈대만 남겨두고 있다.
동도 얼굴바위를 지나 갈비뼈 같은 만곡을 돌아 나오면, 한쪽 발을 바다에 담근 듯한 아치형 바위가 성큼 다가선다. 독립문바위다. 동도 동쪽으로 길게 뻗친 곶(串)의 끝을 마감한 독립문바위는 먼 바다 푸른 물을 배경으로 우뚝해 눈길을 확 당긴다. 가로 판상의 바위가 시루떡 쌓듯 포개져 있다. 바닷물에 침식돼 독립문처럼 골격만 남은 자연의 부산물이다.
독립문바위를 돌면 물속을 자맥질하는 작은 바위섬들을 옆으로 거느리고 10여m 남짓한 시멘트 구조물이 보인다. 구 선착장 자리이다. 현재의 선착장이 완공된 1997년까지 독도의용수비대 시절부터 수비대와 등대 사람들이 생명의 닻줄을 내린 곳이었다.
쌀과 부식, 물, 석유, 장작이 이 선착장을 통해 올라왔고 제대하는 경비대원과 교대하는 등대원들이 떠났던 자리이기도 했다. 그뿐인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서도 뒤쪽 '가제바위'에서 마실 나온 강치들이 너부죽이 배를 깔고 엎드려 있던 곳이기도 했다는데….
이곳에서 살아갈수록 독도가 참으로 오묘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섬이 일본의 트집으로 고초를 겪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조국에 관한 생각도 많아지고, 섬의 바위 이름이나 지명도 그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 지형 땅모양'은 우리 국민들의 애국심과 염원과는 상관없이 이루어진 불가사의다.
삼봉호 연락선을 타고 독도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분명히 섬 일주 중에 선장의 멘트를 듣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한반도 안에 독도가 있다는 것은 잘 아시죠. 그런데 독도에 한반도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셨습니까"라는…. 그리고는 "지금부터 독도에 있는 한반도를 한번 찾아봅시다"는 말을 들을 것이다.
구 선착장 구조물 뒤쪽에는 평평한 바위가 제법 넓게 자리잡고, 그 위쪽으로 동도 정상에 있는 독도경비대 막사로 통하는 계단이 놓였다. 배를 타고 구 선착장을 얼마간 지나치며 뒤를 돌아보면 경비대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는 산 사면(斜面)이 꼭 한반도 지도 모양 그대로이다. 누가 인공으로 손 댄 것도 아닌데 자연이 빚은 피조물 치고는 워낙 그 모양이 비슷해 우연이라고 믿기엔 신비로울 따름이다.
한반도 모양 경사면은 토심(土深)이 깊어 많은 식물들이 살고 있다. 돌피가 우점종(優占種)으로 자리 잡은 가운데 해국과 갯제비쑥도 많이 보인다. 지금은 가을이 돼 이 풀들이 누렇게 바래 그리 선명한 형태를 보이지 못하지만, 여름철에는 주변의 검은색 절벽과 파란색 풀로 색상의 대비를 이뤄 한반도 형태가 더욱 뚜렷하다.
또 하나의 우연은 지지용 밧줄을 묶기 위해 세운 작은 시멘트 기둥이 계단을 따라 늘어서 있는데, 배에서 볼 때 유독 휴전선 부근의 기둥만 두드러져 보인다는 것이다. '언젠가 내 저놈의 기둥을 부숴버려야지.'
독도는 대구스타디움 경기장 넓이에도 못 미치는 작은 섬이다. 그러나 독도는 결코 작은 섬이 아니다. 이 섬은 우리나라의 많은 섬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섬인 것이다. 우리 국민의 애국심이 하나로 모인 대한민국 그 자체이다.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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