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1세기 新보부상] ①환율 파고를 넘는 사람들

中으로…日로…밤샘 선박 이동

▲ 부산-오사카 여객선 팬스타 드림호가 오사카 남항에 도착하자 소호무역상들이 줄지어 하선을 기다리고 있다. 경쟁력 있는 가격에 경쟁력 있는 물품을 구매하기 위한 이들의
▲ 부산-오사카 여객선 팬스타 드림호가 오사카 남항에 도착하자 소호무역상들이 줄지어 하선을 기다리고 있다. 경쟁력 있는 가격에 경쟁력 있는 물품을 구매하기 위한 이들의 '생존 투쟁'은 하선과 동시에 숨가쁘게 진행된다. 석민기자

경기침체와 일자리 감소, 조기퇴직의 확산 등으로 창업에 대한 관심이 높다. 특히 음식점 프랜차이즈를 비롯한 전통적 창업아이템들이 시들해지면서 일본과 중국을 대상으로 소자본 무역(소호무역)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불과 수개월 사이에 불어닥친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과 환율 급등은 이들에게도 엄청난 시련을 가져다 주고 있다.

한·중·일을 넘나들며 환율 파고의 역경을 이겨내고 있는 21세기 보부상들과 그들의 성공과정, 신보부상에 도전하는 사람들, 일본 오사카와 중국 이우의 도매시장, 그리고 신보부상의 명암 및 성공의 조건에 대해 현지 동행취재를 통해 7회에 걸쳐 소개한다.

2008년 10월 10일 부산에서 일본 오사카로 이어지는 현해탄은 너무나 고요했다. 바다는 거친 파도 하나없이 잠잠했고, 2만5천t급(160m×25m, 10층 빌딩 높이) 여객선 팬스타 드림호 역시 정적이 감돌 지경이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승객들로 북적이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다.

상상을 뛰어넘은 거친 환율 파고가 신보부상들의 발길을 묶은 것이다. 지난해 6월 25일 749.11원이었던 원/엔 환율(100엔 기준)은 올해 3월 18일 1,049.5원을 기록했고, 10월 8일 1,395.28원에 이어, 10일에는 마침내 1,400원 중반을 돌파해 버렸다. 1년 4개월 남짓 사이에 두 배로 뛴 환율은 일본에서의 구매가격을 배로 올려 놓았고, 이로 인해 신보부상들의 수익성은 나날이 악화되고 있었다.

"통상 3주에 한 번 일본을 오가는데, 이번에 동행한 상인들은 14명뿐입니다. 보통 때의 절반에 불과한 셈이죠. 환율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일본창업연구소 임동근(49) 소장은 "이 정도 환율 수준에서 일본으로 가는 배를 탔다는 점만 보더라도, 여기 있는 상인들은 나름대로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들이 궁금해졌다. 어떤 사람들일까?

선실에 둘러앉아 맥주와 소주를 나눠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는 그들 속에 슬쩍 끼어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 대부분은 개업한 지 6개월에서 1년 남짓된 신참들이었다.

1년 3개월 전 부산 국제시장 내 깡통시장(전통적 보따리 도매시장)에서 점포를 개업한 박재현(40) 스위티홈(www.sweety_home.co.kr) 대표는 가장 고참에 속했다. 여성의류 판매 등 다양한 사업경력을 가진 그는 여성들이 주로 구매하는 주방용품과 인테리어 소품에 관심을 갖고 소호무역에 나섰고, 지금은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다.

고창주(34·www.astiny.com) 대표의 경력도 이색적이다. 뉴욕 파슨스에서 공부한 패션디자이너인 그는 타미힐피거의 디자이너로 일한 경력에다 명품수입상, 갈빗집 운영, 동대문디자이너 등 10년의 사업경험을 지녔다.

축소모형과 코스프레 의상 등 주로 마니아를 겨냥한 일본잡화 멀티숍을 운영하는 고 대표는 "고객의 구매욕구를 찾아 전파해 주면서 또 다른 마니아를 창출한다는 데 긍지와 자부심을 느낀다"며 "아직은 힘들지만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동생과 유아용품 쇼핑몰 휴맘(www.huemom.com)을 운영하는 강휘진(32·여) 대표는 자신의 육아 경험을, 꿀단지(www.honeydanji.com) 하완우(28) 대표는 누나의 육아경험을 바탕으로 창업에 나서 6개월에서 1년 사이에 월 800만~1천만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환율의 타격은 중국 소호무역에서 더 크게 나타났다(10월 21~25일 방문). 무역상 박철식(가명·43)씨는 "기존 고객과 거래처를 유지 관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우를 찾았다"며 "이우에서 무역업을 하던 한국인 중 60~70%는 부도가 나거나 사업을 철수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또 "사업에는 부침이 있기 마련이고, 이 고비를 잘 넘겨 살아남는 자가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창업연구소 임 소장도 "어려움 속에서 틈새를 찾아 생존을 모색하는 것이 소호무역의 기본이며, 시련은 지나가기 마련"이라면서 "현재 소호무역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의 70%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인데 철저한 준비와 과감한 도전정신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소호(SOHO)= 'Small Office Home Office'의 약자. 인터넷 쇼핑몰 등을 활용해 가정이나 소규모 점포에서 영업을 하는 소규모 사업자를 가리키는 말.

※ 이 기획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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