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영동의 전시 찍어보기] 비엔날레에 대한 환상

부산비엔날레 ~11.15 / 광주비엔날레 ~11.9

부산과 광주에서 거의 동시에 열렸던 비엔날레가 두달여 기간을 거쳐 이제 곧 폐막을 앞두고 있다. 비엔날레라고 하면 마치 박람회장같이 볼거리가 푸지게 차려져 있는 잔치나 축제가 연상된다. 흥청거림이 있을 것 같고, 괜한 기대와 설렘에 안 가보면 서운할 것 같아 시간과 돈의 낭비를 무릅쓰게 한다. 역시 수많은 작품들의 그 다양함이 주는 지각의 산만함은 쉽게 지치게 하는데, 각종 매체에서 받는 자극의 과잉으로 감각의 마비가 올 정도라서 조용한 관조는 동시대 미술의 감상 조건과는 너무도 멀다.

이번 부산비엔날레의 주제는 낭비(Expenditure)이다. 마치 전시된 작품들이 과잉된 창조적 에너지의 무모한 방출이란 느낌이 들 정도였지만, 그래도 조르쥬 바타이유의 사상에서 나온 그 개념은 역설적인 깊은 의미가 있다. 낭비라는 소모적 행위는 소유물의 분산과 대가 없는 무절제한 지출을 가져오는, 우리가 모든 의미를 두는 생산적 가치 개념과 반대된다. 그러나 우리의 이런 생각을 뒤집어 삶을 관조해보면 결국 어떤 고귀한 가치에 대한 헌신이나 진정한 증여나 선물은 모두 낭비의 차원이며 우리의 생존을 지속시키는데도 중요한 존재론적인 행위의 일종임을 깨닫게 된다. 오로지 생산이나 축적이나 획득에만 가치를 둔다면 물론 문화나 예술은 있을 수 없다. 지금 현대철학과 예술은 정말 낭비적으로 주체와 타자, 중심과 주변의 대립을 와해시키고 일의적 의미의 요구를 해체시키는 중이다.

광주비엔날레의 본 전시는 주제를 정하지 않고 한 해 동안 국내외에서 펼쳐졌던 중요한 전시를 모아 재현한 연례보고의 형식을 취했다. 부산보다는 더 큰 규모에다가 매체의 다양성도 더했다. 두 전시에서 공히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현대예술의 흐름이 갈수록 전문영역으로 분화된 매체들 간의 장벽을 허물고 각 장르 간 통합이 더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점이다. 특히 현실을 채우고 있는 온갖 종류의 오브제와 기술들을 동원하여 전달의 효과를 높이는데, 시(詩)나 문자로 쓴 텍스트가 퍼포먼스와 오브제 설치와 하나로 합쳐지고 거기에다 영상 기술의 활용이 더해진다. 그 많은 작품들 중에서 영토에 대한 정치적 담론과 예술의 상대성, 인위적 경계가 만든 사회적 정신적 단절의 문제를 다룬 벨기에 출신 프란시스 알뤼스의 비디오 작품이 인상에 남는다. 작가는 작은 페인트 통을 손에 쥔 채 이스라엘 독립전쟁의 승리 후에 모세 다얀이 지도상에 녹색 연필로 그었다는 그 경계선을 따라 예루살렘의 도시를 땅바닥에 물감을 흘리며 걷는 모습을 기록한다. 사람들 사이를 시내고 교외고 끝없이 걸으며 녹색 물감을 흘리면서 아랍과 이스라엘의 갈등의 상징인 그 선(Green Line)의 의미를 묻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말없이 물감을 흘리며 걷는 그 의미 없는 행위야말로 얼마나 낭비인지. 이런 어리석은 행위(교의적인 입장도 없고 사회적 행동주의에 대한 열망도 아닌 이런 종류의 예술적 행위)가 실제로 무엇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 "때로는 시적인 활동이 정치적일 수 있고 때로는 정치적인 활동이 시적일 수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의 제목인데 그 물음의 답이기도 하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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