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8년째 대구 불령산서 檀君 시봉 박명수 할머니

"단군은 숭배 대상 아닌 우리의 조상입니다"

▲단군 지킴이 박명수 할머니는
▲단군 지킴이 박명수 할머니는 "누구든 단군 할아버지 별장으로 놀러오라"고 했다. 윤정현인턴기자

"우리가 모시지 않으면 누구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30일 오후 대구 수성구 두산동 수성관광호텔 뒷산. '국조단군성전(國祖檀君聖殿)'이라는 표식을 따라 음식점 몇 곳을 지나자 불령산 중턱에 사찰처럼 생긴 건물이 나왔다. 안에서는 한 할머니가 놋그릇처럼 보이는 제기를 열심히 닦고 있었다. "단군 할아버지 집에 온 걸 환영한다"며 활짝 웃는 이 할머니는 박명수(82)씨. 음력 10월 3일 개천절(올해는 10월 31일) 준비를 위해 제기를 닦던 박씨는 18년째 이곳에서 단군을 시봉하고 있다고 했다.

"신화 속의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우리에게는 엄연한 할아버지지요."

박씨는 조상에게 예를 갖추는 게 당연한 일 아니냐고 했다. 그는 팔십 평생을 단군 할아버지와 살아왔다. 박 할머니는 어린 시절 단군을 섬기는 조부로부터 한자를 익혀가면서 자연스럽게 단군을 받아들였다. "조부때부터 2대에 걸쳐 단군을 모셨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암울했어요. 창씨개명이 한창이던 1940년대에 일제는 단군을 허상이라고 했어요."

단군 성전에는 가끔 1, 2명씩 인사를 드리러 오는 이들도 있다. 명절이면 조상의 묘를 찾아 벌초를 하고 절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매년 음력 개천절 때면 30명 남짓한 사람들이 찾아와 함께 제를 올린다.

이곳에서는 매월 음력 초하루마다 환인, 환웅, 단군, 비서갑 신모(웅녀)를 위한 향사와 어천절(음력 3월 15일), 비서갑 신모 제일(2월 15일)을 연다. 박 할머니는 "단군은 숭배의 대상이 아닌 우리의 조상"이라며 지난해 수성구 한 초교에서 단군 성상의 목이 잘려나가는 일이 일어났을 때를 떠올리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내 것이 맞다는 생각을 버리고 화합할 수 있는 큰 마음으로 나서야한다"고 했다.

박 할머니는 여생 역시 지금처럼 보낼 것이라고 했다. 단군의 가르침을 널리 보급하고 알리는 게 자신에게 남은 천명이라고 믿고 있었다. 박씨가 소개한 '단동십훈(檀童十訓)'는 그 한 예다. 그는 "'도리도리', '젬젬', '안녕'하면서 고개를 까딱거리고 '만세'하며 손을 치켜들고 박수치는 10가지 행위는 단군이 아이들을 위해 가르쳐주신 운동"이라며 "후손들의 뇌회전과 혈액순환을 위해 만들어낸 것들에 자부심을 갖고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박 할머니는 "우리가 지키지 않으면 누구도 우리의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제가 가고 나면 단군성전과 일대 부지를 정부에서 공공 자산으로 만들어 보존했으면 한다"고 바람을 남겼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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