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후 대전~논산을 잇는 호남고속도로 지선 논산 방향. 오체투지 순례단을 취재하러 가는 기자의 눈에 희한한 광경이 펼쳐졌다. 그것은 바로 1차로 중앙분리대 쪽으로 고속으로 질주하는 차량을 용케도(?) 피해 떨어진 낙하물이었다. 이 낙하물은 바로 여성용 브래지어. 20여장이 20여m에 걸쳐 떨어져 있었다. 고속도로 주행시 흔히 보는 종이박스나 폐타이어 조각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물건이었다. 자칫 큰 사고를 일으키는 흉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 낙하물이지만 때때로 이처럼 웃음을 나오게 하는 낙하물도 있다. 자가용 운전자들에게 도로 위에서 목격한 '황당 낙하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황당'과 '공포' 교차하는 경험
방송국 PD인 김모(37)씨는 몇 해 전 중부내륙고속도로를 달리다 우스꽝스러운 광경을 목격했다. 신차 수송용 트럭(Car Carrier) 운전자가 트럭을 세우고 도로 위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 트럭 운전자는 운송 도중 고속도로로 떨어진 신차를 다시 운송 트럭으로 올리는 중이었다. 지금도 생각해 보면 빙그레 웃음이 떠오르는 일이다.
신문기자 김모(45)씨는 지난해 어느 날 밤 대구 신천대로를 승용차로 달리다 아찔한 경험을 했다. 앞질러 끼어든 레미콘 차량으로부터 레미콘 덩어리가 떨어져 자신의 차 앞유리를 깨뜨린 것. 다행히 침착히 대응해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고 해당 레미콘 차량 운전사로부터 앞유리 교환 비용을 받았지만,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한 경험이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고로 이어질 뻔한 짜릿한 경험은 이 뿐 만이 아니다. 30대 회사원 송모씨는 얼마 전 겪었던 일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천안~논산 간 고속도로를 대략 오후 10~11시 사이 시속 140㎞로 달리는 송씨의 차량 앞에 갑자기 사람이 나타났다. 깜짝 놀란 송씨는 재빨리 브레이크를 밟았다. 까딱하다간 차가 뒤집힐 수도 있는 위험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송씨가 급히 차에서 내려 발견한 것은 도로 한가운데 떨어져 있던 양배추 아기 인형. 송씨는 "무슨 공포 영화도 아니고…"라며 말을 끝내지 못했다.
세무사 윤모(41)씨도 빠른 대응이 아니었다면 큰 사고를 낼 뻔했다. 10년 전 어느 추운 겨울날 밤 대구~영천 간 국도를 달리던 윤씨는 1차로에서 커브길을 돌다가 급하게 차량 방향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도로에 난데없이 튀어나온 빨간색 대형 물통을 보았기 때문이다. 급히 차를 세우고 확인해 보니 윤씨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그 물통엔 얼음이 꽁꽁 얼려 있었다. 윤씨는 "아마 그대로 박았으면 골로 갔을 것"이라며 씁쓸한 기억을 털어냈다.
지난 2005년 3월 오전에는 경부고속도로 동대구 나들목(IC)에서 서울 방향 2㎞ 지점(도동 나들목 부근)에서는 1t 화물차에서 떨어진 300㎏ 짜리 돼지 한 마리가 고속도로를 돌아다녀 일대에 차량 정체가 빚어지기도 했다.
◆살인무기일 수 있는 도로 위 낙하물
이처럼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도로 등에서 발견되는 낙하물의 종류는 다양하기만 하다. 어떤 이는 파계사 올라가는 길에 1천원짜리 지폐 수십장을 본 적도 있다. 고장 난 냉장고를 갓길에 버려두고 가는 경우도 있다. 앞의 사례들은 다행히 큰 사고나 인명 피해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낙하물로 인한 교통사고는 많지는 않지만 발생한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고속도로 낙하물로 인한 교통사고 접수 건수는 모두 63건. 2006년의 52건보다 11건 늘었다. 경미한 사고는 주로 보험처리를 하는 것을 감안하면 '실제 피해 사례는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추정이다.
문제는 고속으로 질주하는 차량에 모든 낙하물이 살인무기로 변신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트럭에서 떨어지는 낙하물을 피하려다 차량이 전복되거나 뒤따르던 차량과 추돌사고가 나 운전자가 사망한 사례도 있다. 그래서 운전할 때 주의사항으로 물건을 실은 트럭과는 거리를 두고 운전해야 한다는 안전운전 요령도 있다. 그러나 눈앞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낙하물을 피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는 화물차 운전자들이 적재물 관리에 더욱 신경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된다.
시설관리공단 도로관리본부나 도로공사에서 집중적으로 도로를 순찰하고 적재불량 차량에 대해 단속을 펼치는 것도 낙하물로 인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자는 차원에서다. 대구시 도로관리본부 남탁원 과장은 "적재불량 차량은 도로관리 요원들이 현장에서 카메라로 촬영한 뒤에 경찰청에 고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위반 건수나 낙하물 접수 건수가 줄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2006년 도로관리본부에 신고·처리된 낙하물 건수는 180건이 넘었으나 지난해 178건으로 줄었다. 지난 26일 현재는 109건이 접수돼 지난해 같은 기간의 157건에 비해 대폭 줄어든 상황이다.
낙하물로 인해 발생한 사고는 가해자를 찾거나 증거를 대기가 쉽지 않아 대부분 보상이 안 된다. 피해자만 분을 삭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만큼 낙하물 발생원인 자체를 없애는 것이 가장 최선의 대책. 남 과장은 "화물차주가 적재물 관리에 신경을 쓰는 수밖에 없다"며 화물차주와 운전자 모두 주의를 당부했다.
참고로 낙하물 발견시 자동차 전용도로는 시도로관리본부(053-592-3536)나 TBN 대구교통방송(080-664-8000)으로 제보하면 된다. 고속도로는 요금소에서 알려주거나 도로공사 순찰차량에 알리면 된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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