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화, 詩·그림을 만나다] 록키(1976)

'록키'를 얘기하자면 실베스타 스탤론을 빼놓을 수가 없다.

1970년대 중반 그는 무명의 배우였다. 근육질의 몸으로 간혹 어덜트 무비(성인용 영화)에 출연하며 혹독한 무명의 설움을 겪고 있었다. 틈틈이 32편의 각본을 썼지만 모두 영화제작자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서른 살의 나이에 33번째 작품을 썼을 때, 그의 아내는 임신 중이었고, 수중에는 불과 106달러가 남아 있었다.

'록키'라는 제목의 이 대본은 다행히 명제작자 어윈 윙클러의 눈에 띄었다. 제작팀은 록키 발보아 역에 버트 레이놀즈나 로버트 레드포드와 같은 스타를 기용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실베스타 스탤론은 자신이 주연을 맡는 조건을 내걸었다. 무명의 신인에게 모험을 걸고 싶지 않았던 제작사는 제작비 100만달러라는 제한을 걸었다. 실패의 부담을 줄이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영화는 대성공을 거뒀다. 미국에서만 5천600만달러가 넘는 수입을 올렸다. 실베스타 스탤론은 '록키' 한 편의 영화로 아메리칸 드림의 화신으로 영웅이 됐다.

뒷골목 건달이 일약 헤비급 세계 챔피언에 도전하고, 마침내 챔피언이 되어 힘들게 챔피언 벨트를 유지하다가 은퇴하기까지의 과정이 5편의 시리즈로 그려졌다. 1990년 5편에 이어 2006년 만년의 록키가 다시 챔피언에 도전하는 '록키 발보아' 까지 총 6편의 시리즈는 실베스타 스탤론의 인생유전과 흡사하게 닮아 있다.

'록키'는 감동적인 스포츠 영화다.

월남전 패전으로 의기소침한 미국에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록키라는 개인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인 영화다. 삶의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3류 건달 선수가 모든 난관을 뚫고 자신감을 찾아가는 과정은 모든 이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특히 사각의 링에서 펼치는 마지막 15분의 시합장면은 불굴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잘 보여주었다.

시인 이규리는 벌겋게 부어오른 록키의 얼굴을 때마침 무르익은 가을 산에 비유하고 있다. 입술이 터지고, 핏줄로 불거진 얼굴을 초록이 지쳐 든 단풍산으로, 맞아도 맞아도 다시 고개를 들이미는 그를 코뼈가 다 부서진 능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쓰러지지만 몇 번이나 다시 일어서는 록키를 '아름다운 비참'이란 말로 세워주고 있다. 바닥을 치지 않고는 오르지 못하는 법. 경기가 끝나고 '재시합 하겠느냐?'는 질문에 '오늘 맞은 걸로 충분하다'는 그의 말은 혼신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화가 이영철은 성조기가 그려진 팬티를 입은 복서를 전면에 내세웠다. 반을 나눠 흑인 챔피언 아폴로 크리드를 왼쪽에, 뒷골목 하류인생 이탈리안 종마 록키 발보아를 오른쪽에 배치했다.

그는 둘의 격투를 "백인우월주의에 대한 거부감을 희석시키는 대리전"이라고 했다. 아메리칸 드림의 화려한 조명 아래 가려져 있는 '강한 미국'에 대한 집착이 한 치의 양보 없이 녹아 있다는 것이다.

왼쪽은 빛과 영광의 중심에 서 있지만 사실은 허상만 가득한 흑인 챔피언이고, 오른쪽은 실패에 익숙해져 있지만 거칠고 어두운 현실을 따뜻하게 헤쳐나가는 록키이다. 허구와 현실이 한 쌍이 된 복서의 실루엣이다.

그렇지만 둘은 같은 팬티를 입고 있다. 미국이란 틀이다. 이니셜 R은 록키를, 그리고 이니셜을 감싼 노란색은 애드리언의 따뜻한 마음을, 모서리 색 면은 사각의 링을 상징한다.

위대한 것은 결과가 아니다. 맞서는 과정이고,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정신이다. 두렵고, 고통스럽지만 외면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힘, 그 힘은 다름 아닌 사랑에서 나온다.

눈이 찢어지고, 코뼈가 부러진 상처의 순간에 관중석을 향해 '애드리언!'만 외치는 록키의 절규는 그래서 더욱 절절해진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 록키(Rocky, 1976)

감독:존 G. 아빌드센

출연:실베스타 스탤론, 탈리아 샤이어

러닝타임:119분

줄거리:1975년 11월. 필라델피아 빈민촌에 사는 청년 록키 발보아는 4회전 복서로 근근이 살아간다. 애완동물 가게의 점원 아가씨 애드리언을 짝사랑하면서 성실하게 살려고 애쓰는 젊은이. 어느 날 그에게 기회가 온다. 헤비급 세계 챔피언 아폴로 크리드가 무명의 복서에게 도전권을 주려는 독립기념일 이벤트에서 그가 도전자로 선발된 것이다. 두려움과 회의에 빠지지만,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맹훈련에 돌입한다. 그의 목표는 단 한방에 KO를 장식하려는 챔피언의 주먹을 이겨내고 15회를 버티는 것. 드디어 결전의 시간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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