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운전기사가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신윤복이 남자라고 배웠거든요." 더 말을 안 들어도 무슨 말인지 감이 온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을 보는 모양이다. 드라마에서 신윤복이 여자로 등장하니, 당혹스러웠겠다. "그냥 재미로 보세요"라고 했더니 "아무리 그래도 말이지, 드라마가 그렇게 가면 안 되죠"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 영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입니까?" 이번 주 개봉된 '뱅크잡'도 그렇다. "실제 마가렛 공주가 그랬느냐?"고 묻는다.
영화의 엔드 크레딧(엔딩 자막)에는 이야기의 근거를 나타내는 몇 가지 표현이 있다. 가장 많은 것이 'Written by'로 시나리오를 쓴 사람 앞에 붙는다. 누가 쓴 이야기라는 뜻으로, 완벽한 창작물 또는 허구를 뜻한다. 또 하나는 'Story by'다. 시나리오를 쓰지 않았지만, 아이디어를 낸 사람의 이름 앞에 붙는다.
실화냐 아니냐를 두고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이 'based upon a true story' 와 'motivated by'라는 두 가지다. 전자는 실화에 근거하고 있다는 말이고, 후자는 실화가 동기가 되었다는 말이다. '옥토버 스카이', '샤인' 등 인물의 파란만장한 삶을 영화로 옮길 때 전자가 주로 쓰인다. 어느 정도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후자는 좀 모호하다. 작가의 창작에 자극을 준 계기가 된 사건이나, 인물을 직접 거론한 것이다. '뱅크잡'이 전형적이다. 역사적 사건이 동기가 되어 갖가지 살을 붙여 만들어낸 허구다.
영화든 TV드라마든 모두 허구를 기초로 하고 있다. 역사극도 완벽한 사실의 재현은 없다. 사료도 미비할 뿐 아니라, 시청자와 관객의 흥미를 유발시키기 위해서는 허구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예 사실(Fact)과 허구(Fiction)가 조합된 '팩션'(Faction)이란 장르까지 만들어졌다. 팩션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되 반드시 고증에 얽매이지 않고 작가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하여 재해석하는 경향을 가진다.
그런데 최근 '신기전'을 비롯한 역사극들이 몇 가지 의도된 발상을 확장해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 드라마 '세종대왕'에서는 장영실이 산업스파이 역할을 했다는 설정이나, '연개소문'에서 연개소문이 고구려 멸망 때까지 생존했다는 설정 등은 '역사적 오류'로 지탄을 받기도 했다.
'바람의 화원'은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것보다는 '미인도'가 동기(motivated by)가 된 드라마다. 완벽한 허구라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다.
김중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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