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학가 주변에서 외국인 학생과 마주치는 일은 꽤 익숙한 풍경이 됐다. 각 대학들이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집중하면서 외국인 학생들의 수가 매년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권부터,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미국 캐나다 등 구미권까지 외국인 학생들의 국적도 다양해지는 추세다. 한국에 온 외국인 학생들은 첫 학기에는 대부분 기숙사에서 한국 학생들과 함께 생활한다. 좁은 방 한 칸에 말 설고 낯선 학생들이 복작거리며 부대끼고 있는 것. 이들은 어떻게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며 살고 있을까. 한지붕 아래 사는 '세계 학생'들의 유쾌한 동거를 들여다봤다.
◆여섯 남자, 친구가 되다
"Where did you have a lunch?(어디서 점심 먹었어?)" "…점심에 뭐 먹었냐고?" "…" 영남대 생활관 301호에서는 가끔 웃지 못할 동문서답이 오간다. 서툰데다 억양까지 제각각인 영어가 공용어가 된 탓이다. 301호는 한국 대만 중국 프랑스 등 4개국 여섯 남자들이 한지붕 아래서 유쾌한 동거를 하고 있다. 각 언어별로 2명씩이니 짝도 꼭 맞는다. 파텔레몽(24·영어영문학)씨와 보킴루안(20·경제금융)씨가 프랑스 출신이고, 조광위(21·약학과)씨는 대만 국적의 화교이고 공경위(20·행정학과)씨는 중국인. 한국인인 우대식(19·언론정보)·변윤화(19·생명공학학부)씨도 있다. 대화를 위해서는 영어가 필수지만 한 자리에서 4개국어가 섞이는 일도 다반사다. 누가 웃음이라도 터뜨리면 서로 툭툭 치며 '무슨 얘기냐'며 묻는 일도 잦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주된 웃음의 소재는 서로의 '몸개그'다. 자빠지고 넘어지는 몸개그는 만국 공용어. 언어의 차이로 인한 오해는 대개 웃어넘긴다.
서로를 부르는 호칭도 자연스레 정해졌다. 파텔레몽씨는 레이몽, 공경위씨는 콩, 대식씨는 다케시라고 부르는 식이다.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에서다.
매일 아침 가장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건 파텔레몽씨와 공경위씨다. 파텔레몽씨는 오전 6시가 되면 일어나 그날 수업 과제를 해놓는다. 공경위씨는 "중국에서는 오후 10시면 잠자리에 들었는데 여기 친구들은 오전 1, 2시는 돼야 잠이 든다"며 "그 탓에 기상 시간도 오전 5시에서 8시로 확 늦어졌다"고 했다. 남자 6명이 사는 방이 그리 깨끗할 리는 만무하다. 10월 28일 오후 기자가 찾은 이날도 별 다를 게 없었다. 바닥은 먼지투성이였고, 1주일은 모아 놓은 듯한 옷들이 침대에 가득 널린 방도 있었다. 파텔레몽씨는 빨래가 취미인 듯했다. 다용도실 구석에는 온통 파텔레몽씨의 빨래가 쌓여있고, 가장 많이 걸린 빨래도 파텔레몽씨의 옷이다. 곳곳에 옷가지가 널려있고, 먹다남은 페트병과 컵라면통도 굴러다닌다. 하루만 지나면 작은 쓰레기통이 꽉 차 넘칠 정도다. "6명이 살다 보니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데 다들 버리러 가기 싫으니까 무조건 버텨요.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이 나서서 버리는 거죠. 하하"(파텔레몽). 보킴루안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넌 한국에 왜 왔냐?"다. "옆에서 보면 진짜 공부 안 해요. 그래서 매일 넌 여기 왜 왔냐고 물어봐요. 크크"(조광위). 사실 기자가 찾아간 날도 그는 '가볍게' 수업을 제꼈다.
수업이 끝난 후 저녁 시간은 함께 보낸다. "방에 돌아오면 함께 놀면서 시간을 보낼 친구들이 있어서 좋아요. 밤마다 보쌈이나 닭튀김을 주문해 먹기도 하고요." "누가 가장 먹는 걸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일제히 손가락으로 보킴루안을 가리키며 낄낄거렸다. 서로에게 익숙해지다 보니 문화적 차이도 자연스레 극복하게 됐다. "화장실 노크를 잘 안 하는 게 처음에는 이상했어요. 문이 잠겨 있어도 일단 두드려봐야 되는데 아무도 안 하더라고요"(파텔레몽). 이제는 룸메이트가 자면서 이를 갈거나 잠꼬대를 해도 "그냥 자장가 수준"이 될 정도가 됐다. 여섯 남자가 북적거리지만 아직 별다른 다툼은 없다고 했다.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 덕분이다. 파텔레몽씨는 "프랑스에서도 대가족 사이에서 자랐기 때문에 북적이는 데 익숙하고 적응이 어렵지 않다"며 "서로 지켜야 할 예절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별다른 충돌은 없다"고 했다. 극복되지 않는 유일한 문제는? "화장실 냄새요. 누구라고 말하긴 그렇지만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고 나오면 냄새가…. 하하하."
◆그녀들이 사는 법
계명대 명교생활관 사랑동 418호에는 최지현(21·영문학과)씨와 러시아 출신의 밀라(18·경제학과)양이 두달째 함께 지내고 있다. 방은 꽤 정갈했다. 전공서적과 영어책, 화장품, 노트북 등이 살림의 전부. 정리도 말끔하게 돼 있다. 방청소는 함께 하지만 바닥은 주로 지현씨가 맡는 편이다. "실내에서 신발을 신고 생활하는 러시아 문화 탓인지 밀라가 바닥이 더러운 것에 별로 신경을 안 쓰더라고요. 제가 주로 바닥을 닦는데 신발을 신고 안 들어오는 것도 다행이죠 뭐." 밀라양과 만나며 러시아 사람에 대한 선입견도 많이 깨졌다. "예전에 봤던 러시아 남학생은 냄새가 심했거든요. 그래서 러시아 사람들은 다들 안 씻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옆에 있던 밀라양이 "그냥 사람마다 다른 것뿐"이라며 손을 내저었다.
서로의 문화적 다름에 대해 놀란 점은 또 있다. "한국 사람들은 공부 중독인 것 같아요. 늦은 밤에도 도서관에 자리가 없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러시아에서는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든요. 시험기간에 지현이와 도서관에 가서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는데 꽤 흥미롭더라고요."(밀라) "제가 재채기를 하면 'bless you'라고 해요. 샤워를 하고 오면 'congratulations!'이라고 말하고요. 처음에는 '씻고 온 게 그렇게 축하할 일인가?'하고 의아했는데 곧 서양인들의 대화 습관이라는 걸 알아챘죠. 형식적이지만 들으면 기분은 좋아요."(최지현)
한국 음식이 맞지 않아 거의 식사를 못했던 밀라양을 다독여준 건 지현씨였다. "처음 김치를 먹었을 때 도저히 입맛에 안 맞더라고요. 그래서 점심에 샌드위치를 먹고 거의 굶으며 버텼어요. 하지만 지금은 지현이 덕분에 삼겹살과 불고기도 좋아하고, 거의 모든 한국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됐어요. 특히 러시아에서는 먹을 수 없는 고구마가 정말 좋아요."(밀라). 저녁식사를 끝내면 두 사람은 늘 함께 시간을 보낸다. 노래방에 가기도 하고, 샌드위치를 먹으러 가거나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기도 한다. 한국 노래를 좋아하는 밀라양에게 지현씨가 가르쳐준 노래는 동물원의 '널 사랑하겠어'.
밀라양의 요즘 바람은 한국 남자친구를 사귀는 일. "똑똑하고 잘생기고 귀여운 남학생들이 많아요. 며칠 전에는 한국 남학생으로부터 사귀자는 프러포즈를 받았는데 제 타입이 아니어서 거절했어요. 하하." 이번 겨울방학에 지현씨는 밀라양과 고향인 포항에 함께 갈 생각이다. 밀라양도 방학 때 러시아로 돌아가겠다는 계획을 바꿨다. 지현씨는 "아시아와 유럽의 문화는 다르지만 성격자체가 다른 것 같지는 않다"며 "밀라가 한국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 한글과 한국 문화에 대해 가능한 한 많이 일러줄 것"이라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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