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마침내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버렸다. 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한 노무현 정부가 수도권 압력에 밀려 조금씩 완화하던 수도권 규제를 거리낌없이 완전히 풀어버린 것이다. 국토의 효율적 이용과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을 내세워 수도권 산업단지 내 공장의 신·증설을 전면 허용했다.
수도권 규제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심각한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침체를 거듭하는 지방에 기업들이 들어서도록 하기 위해 실시 중인 일종의 고육지책이다. 수도권 집중 완화 경향이 뚜렷해지고 지방이 자립적 발전을 할 기반을 마련했다고 판단되는 시점에서는 마땅히 수도권 규제를 풀어야 한다. 그래서 대통령 스스로도 '선 지방육성, 후 수도권 규제완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런데 그 입장을 180도 바꿔 약간의 규제완화가 아니라 전면적인 규제철폐를 선언한 것이다.
그동안 수도권 지역 자치단체나 연구기관 등은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면 1, 2%의 경제성장률 상승 효과가 있다고 주장해 왔다. 이번에 전경련은 수도권 규제완화시 기업들이 4조2천억원을 투자할 것이라는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하지만 수도권 규제 완화가 지방경제에 어떤 효과를 미칠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지역균형발전협의체 자문단 연구결과에 의하면 첨단업종 공장의 수도권 입지 규제가 완화되면 지방은 25개 업종에서 부가가치가 35조7천492억원 감소하고 일자리가 8만5천570개 없어진다고 한다. 또 지역산업 연관분석을 해 본 결과 수도권은 타 지역에 비해 전후방 연관효과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 투자를 줄이고 그 재원으로 지방 투자를 늘리면 장기적으로 성장률을 높이지만, 반대로 지방 투자를 줄이고 그 재원으로 수도권 투자를 늘리면 성장률을 낮춘다는 연구결과도 이미 나와 있다.
그런데 이러한 분석 결과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수도권 규제를 철폐하면, 그동안의 균형발전 정책에 의해 미약하나마 형성되기 시작한 지방의 자립적 성장 기반이 송두리째 날아가버릴 것이라는 점이다. 지역 전략산업 육성도 물거품이 될 것이고 지방경제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광역경제권 형성 정책도 사상누각이 될 것이다.
지방에서 기업이 떠나고 오지 않는데 전략산업 육성이니 광역경제권 형성이니 하는 것이 가당키나 할 것인가? 지방으로 기업이 모이지 않으면 이전된 공공기관만으로 구성된 혁신도시는 무슨 쓸모가 있을 것인가? 정부는 규제완화로 창출되는 이익을 비수도권 지역의 투자지원에 활용하겠다고 말하지만, 이는 지역 산업기반이 무너지고 지방경제가 죽은 후에 위자료를 내겠다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수도권 규제 철폐는 수도권 규제가 수도권의 양적 팽창을 막는 대신 질적 성장을 자극할 수 있는 계기를 없애버리고, 수도권 과밀을 심화시켜 지가상승을 부추기고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여, 결국 수도권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다.
이런 결과가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는 수도권 규제 철폐가 수도권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아무런 근거 제시 없이, 그것이 초래할 지방경제 황폐화 효과에 대한 아무런 고려 없이, 무책임하게 수도권 규제를 철폐하였다.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기업 프렌들리 정책을 실시한다던 정부가 마침내 최악의 '수도권 프렌들리' 정책을 강행하려고 한다.
수도권 규제 철폐는 대한민국의 선진화에도, 국가경쟁력 강화에도 기여하지 못할 것이다. 금융위기로 파탄이 난 미국식 금융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금융규제를 완화하는 위험한 정책을 추진하려는 정부가 이번에는 또 따른 위험한 정책을 추진하려고 하고 있다.
수도권 규제 철폐는 지방과 수도권의 경쟁력을 함께 떨어뜨려 나라를 기울게 만드는 정책 즉 경국지책(傾國之策)이 될 위험이 높다. 따라서 그것은 마땅히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 지방이 자립적 기반을 갖출 때까지 묵직하게 수도권 규제를 유지해야 한다.
김형기(대구경북지역혁신협의회 의장·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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