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頂上石

팔공산 고찰 環城寺(환성사)는 주변 산줄기에 의해 城(성)처럼 빙 둘러싸였다. 계곡과 길이 동편 하양읍 쪽으로 터져 있지만 그마저 알아채지 못할 정도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절'이란 이름이 정말 어울린다. 팔공산 把溪寺(파계사) 터는 남쪽 한 방향으로만 터진 둥그런 고리 모양 산줄기의 한복판에 해당한다. 고리의 북쪽과 동'서쪽에 난 골들의 물이 모이는 合水点(합수점)이 그 아래 연못이다. '여러 계곡이 한데 모이는 지점에 자리한 사찰'이라는 절 이름이 여실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절들 인접 산봉우리에 '환성산' '파계봉'이란 이름을 붙이는 건 語不成說(어불성설)이다. 그것까지 성에 둘러싸이거나 계곡을 틀어쥔 형상이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실제 두 사찰 인접 지형엔 그런 기미가 전혀 없고, 현지 주민들도 예부터 그걸 잘 안다. 그래서 그들에게 '파계봉'은 마른하늘 날천둥 같은 이름이고, 절 서편에 '감투봉'이 있는 줄만 알다 듣는 '환성산'이란 소리는 외국말 같이 귀에 설다.

그런 엉터리 이름을 고착시키고 자꾸 퍼뜨리는 주범 중 하나가 '頂上石(정상석)'이다. 많은 돈과 정성을 들여 고개턱(재)이나 봉우리 꼭대기에 이름을 새겨 세운 돌 말이다. 근래 신무동 뒷능선 991m봉에 '파계봉'이라 새긴 돌이 섰더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 봉우리는 신무동 계곡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 파계사를 에워싼 고리형 산줄기에서 많이 벗어나 있기까지 한데도 그렇다는 것이다. 가슴 철렁케 하는 이야기였다.

정상석이 말썽인 곳은 물론 이곳만이 아니다. 상주시청 등은 작년에 속리산 최고봉 이름을 '천황봉'에서 '천왕봉'으로 바로잡았다. 문경시청은 '이화령'이 왜색이 짙다며 폐기하고 '이우릿재'라는 전래 명칭을 되찾았다. 하지만 최근 다시 가 봐도 그곳 정상석 글씨는 여전히 천황봉이고 이화령이었다.

정말 고쳐야 할 것은 저렇게 팽개친 채, 멀쩡한 竹嶺(죽령) 정상석 글씨를 바꿔 새기는 일로 말썽이 일었다는 보도가 며칠 전 있었다. 한자가 선비의 고장에 어울린다나 어쨌다나 해서 한글을 지웠다는 얘기다.

그럴 돈 있으면 국도 5호선 팔공산 가산면 구간 재에 '쐐고개'라는 전래 명칭 표석부터 세웠으면 싶다. 인접 마을 이름에서 따 '다부재'라 대충 불리지만, 기실 그곳은 한국전쟁 최대의 승부 포인트였던 만큼 아무리 소중히 대접해도 지나침이 없을 곳이기 때문이다.

박종봉 논설위원 pax@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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