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는 자주 전출을 다녔다. 잦은 이사와 전학 때문에 나는 점점 내면으로 파고드는 아이가 됐다. 낯선 집, 낯선 동네, 낯선 길, 낯선 얼굴들, 낯선 교사(校舍)로 힘들어했다. 아이들 특유의 텃세와 통과의례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어느 동네, 어느 학교를 가더라도 나는 새로 온 아이였고,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그리고 익숙해질 만하면 이사와 전학을 해야 했다. 그런 내게 유일한 친구는 현동이었다. 우리 집에서 기르는 수컷 개였는데 녀석의 처지도 나와 다를 바 없었다. 새로 이사가는 동네마다 동네 개들의 텃세에 시달려야 했다. 내가 코피가 터져 들어오기 일쑤이듯 녀석도 귀가 찢기거나 다리를 절룩거리는 일이 흔했다.
현동이와 나는 닮은 구석이 많았다. 나는 소심하고 내성적이어서 친구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했다. 현동이 역시 다른 개들 앞에서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법이 없었다. 중학교 2학년이던 어느 날 나는 다시 새 학교로 전학했다.
"어이, 새로 온 꼬맹이!"
나는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덩치 큰 서너 명이 교실 뒤편, 볕이 드는 창가에 모여 내게 눈길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손가락을 까닥이며 나를 불렀다. 나는 멱살을 잡힌 아이처럼 끌려갔다.
"얌마, 부시기(담배) 있어?"
"없는데."
"없어? 뒤져서 나오면 어쩔래? 부시기 한 대에 아구창 열 방씩이다."
그날 나는 가까스로 폭행을 면했다. 그러나 불안과 모멸감에 떨었다. 내성적인 성격은 내 비참한 처지를 실제보다 과장했고 그날 밤 내내 잠을 설쳤다. 이튿날 등교하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꾀병이라도 앓으면서 드러눕고 싶었다. 그러나 하루 이틀 학교에 빠진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었다.
나는 터벅터벅 학교로 향했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현동이가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이제는 늙어서 군데군데 털이 빠진, 말 그대로 비루먹은 개꼴로 현동이는 나를 따르고 있었다.
"가!"
내가 발로 땅을 구르며 소리치면 현동이는 멈췄다. 그러나 내가 걷기 시작하면 현동이는 나를 따라 걸었다.
"가! 집에 가란 말야!"
내가 고함칠 때마다 현동이는 멈췄지만 끝내 나를 쫓아왔다. 현동이는 자신이 새 동네에서 호된 신고식을 치르듯, 내가 그런 신고식을 치르고 있음을 알았다. 내가 죽기보다 싫은 걸음으로 학교로 향하고 있음도 알았다. 현동이는 나를 보호해주고 싶은 마음에 나를 따라왔고 끝내는 교실에까지 들어왔다. 이미 아이들이 반쯤 와 있었고 하나 둘 아이들이 속속 도착하는 중이었다.
"이거 웬 똥개야."
못된 아이들이 발로 개를 찼다. 현동이는 깨갱거리며 내게로 다가오려고 애썼다. 아이들의 발길질에 현동이는 이리저리 나뒹굴었다. 개가 일어나면 겁 많은 아이들은 물러섰다.
"네 개야?"
아이들이 물었고 나는 '아니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악마와 야합할 생각이 스쳐갔다. 나는 청소 도구함으로 달려가 대걸레를 빼들었다. 그리고 현동이를 내리쳤다. 퍽! 퍽! 퍽! 사정없이 내리쳤다. 나는 적개심으로 불타고 있었다. 나를 괴롭히던 다른 아이들을 향해야 할 적개심이 내 친구이며, 나를 지켜주겠다고 따라온 현동이를 향했다. 담임 선생님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현동이를 패 죽였을지도 모른다.
"그만두지 못해! 아무리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어찌 이토록 심하게 때린단 말이냐? 이 자식은 겉으로 얌전해 보이는데 여간 독종이 아닌 게로구나. 너네 개냐?"
"아닙니다."
담임 선생님이 현동이를 달래 밖으로 내보냈다. 현동이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교실을 나갔다. 아이들은 질린 눈으로 나를 흘끔흘끔 바라보았다. 그렇게 교실을 나간 현동이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심한 상처로 어디서 죽었는지도 모른다. 내 잔인한 행동을 목격한 뒤로 나를 함부로 대하는 아이는 없어졌다.
나는 어째서 현동이를 그토록 잔인하게 때렸을까. 나는 악마일까? 겁 많은 천사일까? 어쩌면 소심하고 내성적인 내 성격이 그처럼 잔혹한 폭력의 근원은 아니었을까. 겁 많은 사람이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고, 나약한 사람이 마약에 빠진다는 한 경찰관의 말은 일리 있어 보인다.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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