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도구로 '사랑'과 '두려움'을 꼽았다. 가장 좋은 경우는 두 가지를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아돌프 히틀러(1889~1945)다.
캔버스에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감성적인 사나이가 왜, 어떻게 독재자가 되었을까.
5천만명 이상이 숨지거나 다치고, 유대인과 장애인을 대학살하고 생체실험을 감행한 한 독재자의 광기, 그것은 한 개인의 광기였을까.
이 책은 '독일국민의 집단적 애국주의와 히틀러의 공모'라는 관점에서 독재를 조명한 히틀러 평전이다. '애국'이란 이름으로 집단적으로 그에게 충성을 맹세한 7천만 독일국민이 히틀러의 뒤를 희미하게 받치고 있었다는 시각이다. 현재까지도 금서로 여겨지고 있는 히틀러의 '나의 투쟁'이 나치정권 당시 1천만부가량 유통되었다는 사실은 당시 히틀러와 독일국민 사이에 연결된 단단한 고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와 1920년대 말부터 심화된 사회경제적 위기를 그들은 '광신적 애국주의'라는 마약으로 잊으려 했다. 이성의 원칙들은 차단됐고, 그들은 자신들이 근대화의 희생양이라고 여겼다. 자신들이 겪은 실패들을 모두 근대성의 탓으로 돌렸다. 그 타깃이 유대인이었다.
유대인이 독일인구의 1%를 넘긴 적이 없었다. 그러나 독일인 노벨상 수상자 중 4분의 1, 판·검사의 6%, 변호사와 공증인의 15%, 의사의 7%, 언론인과 작가의 8% 이상이 유대인이었다. 그들은 '근대화'의 최대 수혜자였다.
히틀러는 유대인을 비난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국민을 유대인에 대항한 해방전선으로 이끌고 갔다. 이 전쟁은 결국 잔인한 대학살로 끝났다.
지은이는 히틀러의 삶, 주로 독일정치계에 입문하여 최후를 맞기까지의 정치적 행보와 독일을 중심으로 한 전쟁의 전개과정, 히틀러를 끝까지 신뢰한 독일국민, 독일과 유럽 각 국가들 간의 복잡한 관계를 분석하며 히틀러와 독일국민의 집단애국이 어떻게 공명하여 결국 비극적인 종말로 치닫는지를 연대순으로 서술하고 있다.
히틀러는 독일국민이 원했던 애국심을 이용하여 끝까지 권력을 지킬 수 있었으며, 독일국민 또한 히틀러가 뿌려놓은 애국이라는 밑밥에 자발적으로 모여들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독일의 '벨트'(Die Welt)지 편집인과 뮌헨 대학교 국제관계학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슈피겔' '슈테른' '타츠' 등 좌우익을 가리지 않고 각종 언론에 비중 있는 에세이를 써 독일사회에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킨 저널리스트다. 그는 2004년 이 책의 출판기념회에서 '나의 투쟁'을 성숙한 독일국민이 사서 볼 수 있게 판매금지 목록에서 지워야 한다고 촉구하여 독일사회를 한바탕 시끄럽게 하기도 했다.
히틀러의 연대기와 함께 당시 독일국민의 심리를 갖가지 사료와 해박한 지식으로 엮어내고 있다. 히틀러와 국민의 공모를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은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는 보편적 인간 가치를 위협하는 '집단애국'을 경계하는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한다. 473쪽. 2만8천원.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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