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줄로 읽는 한권]오갈 데 없는 인텔리 청년들

요즘 청년들은 모니터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 고시 발표 날이나 입사 시험 발표 날이면, 붙은 놈이나 떨어진 놈이나 죄다 합격자 명단이 나열된 윈도를 들여다보며 그렇게 서럽게 울고 있다. 워낙 구직난이 심하다 보니, 참말로 정권만 바뀌면 취직이 좀 잘 되려나 기대하는 친구들도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공기업 민영화, 공무원 감원, 감세 정책 등을 보건대, 청년 실업난의 해결은 '경제 대통령' 시절에도 여전히 쉽지 않아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이 문제는 '정치적인'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일자리에 비해 고학력자들이 너무 많이 양산되는 구조적인 문제가 깔려있는 것이다. 돌잡이 아기에게 돈을 잡으라고 박수치는 배금의 사회에서, 본의든 아니든 고급인력이 되는 것은 아주 정해진 코스다. 그러다 보니 한 자릿수의 일자리를 놓고 수백명이 영혼을 걸고 싸우는 사태는 계속 반복된다.

인텔리가 아니었으면 차라리 노동자가 되었을 것인데 인텔리인지라 그 속에 들어갔다가도 도로 달아나오는 것이 99프로다. 그 나머지는 모두 어깨가 축 처진 무직 인텔리요 무기력한 문화 예비군 속에서 푸른 한숨만 쉬는 초상집의 주인 없는 개들이다. 레디 메이드 인생이다. 『레디 메이드 인생』 채만식 지음/문학과지성사/8천500원/388p

따지고 보면 이런 문제는 딱히 우리 시대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채만식이 살던 1930년대의 한반도에서도, 존 오스본이 살던 1950년대의 영국에서도, 배경 없는 인텔리들이 갈 길 없이 방황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비생산적인 청춘들 중의 일부는 그들의 신경질과 우울증, 전 세대를 향한 냉소를 품어 까칠한 문학의 알들을 까놓았다. 그런 성과물들은 청춘의 고통 게이지가 비슷하게 채워지는 시대에, 조금 더 빛을 발하는 경향이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앨리슨의 아버지가 오랜만에 인도로부터 돌아왔을 때 어떤 감상이었던지 알만해. 에드워드왕조 시대에는 군인이래도 멋있게 살 수 있었으니까. …… 그게 엉터리이든 아니든 나 같은 사람까지도 어떤 면에서는 부러워지거든. 자기 세계를 가질 수 없다면, 다른 사람의 세계를 그리워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전 세대를 향한 지미 포터의 냉소적인 대사)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존 오스본 지음/박준용 옮김/포도원/3천원/103p

문학은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해 주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문학은 우리를 시대를 초월한 동류들에게로 안내한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왜 더 치열하게 싸우지 않았냐고, 왜 하필 돈을 잡지 않았냐고 추궁하진 않는다. 모니터를 보다 지친 청춘들의 곁에서, 같이 서럽게 울어 줄 뿐이다.

박지형(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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