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종 보이스피싱, 유학생 부모 노린다

"자녀 납치…돈 보내라" 거짓 협박

"자식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데, 어떤 부모가 보이스피싱이라는 확신을 갖고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미국 오클라호마에서 어학연수 중인 아들을 둔 이모(52·경북 영천)씨는 지난달 31일 오후 한 통의 낯선 전화를 받았다. 어눌한 발음의 한 중국인이 "당신의 아이를 인질로 잡고 있으니 당장 돈을 송금하라"며 울부짖는 아이의 음성을 들려줬다. 난데없는 납치 소식과 울음소리에 깜짝 놀란 이씨는 "일단 아내가 돈을 관리하고 있으니 아내와 통화하라"며 아내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준 뒤, 유학원을 통해 아들(23)의 행방을 수소문해 자녀가 무사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내의 전화번호를 가르쳐 준 것이 화근이었다. 보이스피싱 사기범은 이씨가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동안 아내 김모(50)씨에게 전화를 해 욕설과 협박을 계속하며 인터넷뱅킹을 통해 즉각 돈을 송금할 것을 요구했던 것.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이씨가 아내에게 달려갔을 때는 이미 아내는 380만원을 사기범의 계좌로 입금한 후였다.

이씨는 "통장 잔고가 380만원밖에 없어 불행중 다행이었지만, 이렇게 어이없이 속아넘어갈 줄은 몰랐다"며 "어떤 유학생 부모가 자녀의 납치 소식에 당황하지 않겠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씨가 겪은 피해 사례는 최근 자녀를 해외에 보낸 뒤 불안해 하는 부모의 심리를 이용, 부모에게 '아이를 납치했다'는 거짓 협박전화를 걸어 돈을 가로채는 신종 '보이스피싱' 수법이다. 범인들은 국내에서 발신번호 조작이 가능한 인터넷 전화를 이용해 마치 해외에서 전화가 걸려온 것처럼 가장하는 등 아무리 '보이스피싱' 수법을 잘 알고 있는 부모라도 깜빡 속아넘어가도록 치밀한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대구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관계자는 "무작위로 전화를 걸지만 유학생 자녀를 둔 부모는 가슴이 덜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용한 악질 범죄"라며 "돈을 송금했을 경우 즉시 거래 은행에 지급정지 신청을 하고 경찰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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