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교과서는 史觀의 싸움장이 아니다

독소전(1941-1945)에서 소련을 승리로 이끌었던 소련군 총사령관 대리 게오르기 쥬코프 원수는 1960년대에 두권짜리 회고록을 썼다. 그 초판이 발간됐을 때 쥬코프는 "저 책, 저것은 내 것이 아니야" 라고 투덜댔다. 그 이유는 회고록이 심하게 조작됐기 때문이다. 주코프는 당시 소련 지도자였던 브레즈네프가 독소전중 남부전선에서 벌어진 한 전투에 참여했다는 허구를 집어넣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극히 자잘한 표현상의 변경도 강요받았다. 그는 독소전 초기 소련의 군사적 실패를 '패주'라고 표현하고 싶었지만 '퇴각'이라고 써야만 했다('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리처드 오버리).

주코프 회고록이 겪은 이같은 우여곡절은 객관적이고 불편부당한 역사서술의 가능성에 대한 역사학계의 오래된 고민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쥬코프가 받은 외적 압력 같은 것만 없으면 '있는 그대로의 역사'는 가능한 것인가. 독일의 역사학자 레오폴드 랑케는 이 물음에 대해 '그렇다' 대신 '그렇게 해야 한다'로 비켜갔다.역사가의 임무는 자아를 消去(소거)한 상태에서 '과거에 실재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밝히는 것, 곧 '역사적 사실이 스스로 이야기하게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답을 이렇게 피해가도 역사서술이 안고 있는 근본적 한계는 해결되지 않는다. 역사적 사실은 하늘의 별처럼 많다. 역사서술은 이들을 취사선택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취사선택에는 역사가의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취사선택을 하는 순간 역사서술은 변형이나 왜곡을 피할 수 없다.

이러한 반성에서 나온 것이 E H 카 類(류)의 '현재와 대화로서의 역사'이다. 카는 기록된 역사는 애초부터 객관적일 수 없다고 한다. 기록자는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의 산물이자 그 사회의 의식적.무의식적 대변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가는 현재의 시각에 따라 역사를 끊임없이 재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 오늘의 시각에 의한 역사의 재해석만 가능하다면 역사서술이란 궁극적으로 '역사에 관한 사유'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게 된다('역사와 진실', A.샤프). 객체로서의 역사는 사라지고 역사를 어떻게 해석하고 창조할 것이냐하는 문제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좌편향 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한 교육과학부의 수정권고를 집필자들이 거부했다. 이들은 여러가지 거부 이유를 내세우고 있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자신들의 記述(기술)에 대한 좌편향 논란은 허구라는 것이다. 문제는 허구라는 주장이 찬반토론을 거쳐 도출된 결론이 아니라 자신들의 일방적 주장이라는 점이다. 또 왜 좌편향이 아닌지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도 않았다. 그들이 내세운 근거라는 것은 "50여개의 수정권고안중 절반 이상이 숫자채우기식 첨삭지도 수준"이라는 것에 불과하다.

이 뿐만 아니다. 객관적인 역사서술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면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이들의 서술 역시 개관적이라고 할 근거 역시 없다. 특히 현대에 올수록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직접적으로 얽혀있어 오히려 사료의 불충분, 왜곡 문제에서 더 자유롭지 못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들의 수정권고 거부는 역사서술의 이러한 한계를 애써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첨삭지도 이외의)쟁점이 될 수 있는 부분들도 어디까지나 검인정제도하에서 다양성의 측면으로 봐야 할 것"이라며 역사를 보는 다양한 시각의 인정을 요구했다. 그렇다면 반대편(교과부)의 수정권고 역시 다양성의 한 측면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교과부의 조치가 온당하다는 말로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한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인정하는 지식과 시각이 담겨져야 하는 것이 교과서다. 그런 점에서 역사교과사는 史觀(사관)의 싸움장이 되어서는 안된다. 궁극적으로 불편부당한 역사서술이 불가능하다면, 그에 최대한 가까워질 수 있도록 시간이 걸리겠지만 반대편과 끝장토론이라도 벌이라고 집필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정경훈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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