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미운털 박힌 포항 고철업계 '부도 위기'

"계속 이런 식으로 간다면 머지 않아 도산할 겁니다. 제강업계와 행정의 도움을 바랄 뿐입니다."(고철업체 관계자)

"우리가 어려울 때 당했던 일을 생각하면 동정의 여지가 없습니다."(제강업체 임원)

"원자재 파동이 났을 때 업계 대표를 초청해 사재기 자제 등을 당부했지만 별 반응이 없었습니다. 현 단계에서 고철업계에 대한 특별한 지원책은 검토하지 않고 있습니다."(포항시 관계자)

원자재가 없어서 물건을 못 만든다던 최고의 호경기에서부터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최악의 불황까지, 지난 8개월간 경기변화를 극명하게 체험하고 있는 고철(철스크랩)업계가 지역 경제계의 애물단지 신세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서 '미운 오리 새끼'로 전락한 것.

지난 6월 고철값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연말에 비해 2배 가까이 올랐지만 그래도 품귀였다. 포항공단 내 상당수 철강사들은 고철을 구하지 못해 조업중단 위기에 몰렸고 포항시는 대형 고철업체 대표들을 초청해 "고철 야적장 문을 열어달라고 호소까지 했다. 시중에서는 "야적장 문을 닫은 채 병원에 입원하는 등 가격이 더 오를 때를 기다리며 '합법적'으로 잠적한 업주도 많다"는 소문도 파다했다.

그러나 지난 8월 이후 갑자기 몰아닥친 금융위기로 철강제품 판매난이 시작되면서 대비할 틈도 없이 고철값이 곤두박칠쳐, 현재 고철시세는 6월에 비해 40%선으로 폭락했다. 그나마 수요가 없어 일부에서는 투매현상까지 빚어졌다는 게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비싼 값에 사재기를 했던 업체들의 경우 연쇄부도 가능성도 높다는 예측도 많다.

포항시는 최근 철강업계가 극심한 판매난으로 어려움에 처하자 나름대로 지원방안 수립에 나섰다. 즉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행정적인 지원책을 찾고 있다. 다만 고철업계는 지원대상에서 빠질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시청 관계자는 "원자재 파동 과정에서 축적된 잉여금이 많을 테고, 외부에서 유입됐던 투기성 자금이 자연적으로 정리되는 것이지 정상적으로 영업한 업주들은 다른 업계와 비슷한 정도의 어려움만 겪을 것"이라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지난 봄 '창고를 열어달라'고 호소할 당시 묵묵부답이었던 상당수 업자들에 대한 서운했던 감정이 실려 있음을 부인하지도 않았다.

경기회복을 위해 정부와 자치단체가 산업계에 대한 지원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지만 유독 고철업계는 동정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포항·박정출기자 jc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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