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은 태권브이처럼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또는 자승자박 自繩自縛 - 김성열 / 수성아트피아 관장 / 20081105
과거 어느 백만장자와 만난 일이 있다. 백만장자 왈, "당신의 지금 모습은 10년 전 당신이 생각하고 선택했던 그 모든 것들의 결과이다."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10년 뒤의 나의 모습은 지금 내가 생각하고 선택하는 모든 것들의 결과가 될 것이다'라는 생각을 떠올리면서 어떤 무서움이 엄습했던 것이다.
한국영화계가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제작편수를 비롯하여 투자 역시도 60% 이상 줄었단다. 1년에 무려 100편이 넘는 작품이 제작되는 신기의 경지를 넘어섰던 나라가 3년 만에 원점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안으로 제시되는 내용은 언제나 그렇듯이 콘텐츠, 창의성, 독창성 등의 단어들이다
이 말 자체는 옳은 말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조금 더 현실적인 생각을 한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콘텐츠, 창의성, 독창성이 아니다. 또 이러한 것들은 태권브이가 나타날 때처럼 '짠' 하고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것들은 어느 순간에나 존재하고 있고 또 심지어 누구나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아직 제자리걸음을 채 하지 못하고 있는 창의성과 독창성이라는 어린 자식들이 맘껏 걸음걸이 운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총체적 문화가 문제인 것이다.
3년 전부터 지금까지 수천 개 이상의 아이템들이 투자자들에게 제시되었고 수백 개 이상의 작품들이 만들어졌다. 그 모든 작품들이 창의성과 독창성이 없는 작품들이었을까?
혹 영화와 관련한 투자자들, 예술가들, 그리고 작품을 매개로 기획, 유통, 마케팅하는 사람들 등 이 일체의 종사자들이 창의성·독창성을 택하기보다는 성공모델 답습, 유사 아이템 답습을 택했던 것은 아닌가? 창작활동의 고유한 본질인 '창의성-모두 다 다른 시각'은 망각하고 (소위 말하는) '성공모델'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겉모습은 화려하되 궁극적으로 시장 전체의 자생력은 스스로 근절시켰던 것은 아닌가 말이다.
오늘날의 한국영화위기는 3년 전부터 이미 예고되었었고 수많은 지적들이 분명히 있었다. 즉, 이러한 결과는 그 안에서 주류로서 활발히 활동했던 주인공들의 자승자박에 다름아니라고 하겠다.
한 가지. 간과하면 안 될 중요하고 슬픈 사실은, 이 모든 일들의 최대의 피해자가 바로 영화관계자들이 아니라 우리 관객들이라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관객들은 양질의 다양한 작품들을 보고 즐길 수 있는 수준이 됨과 동시에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유사한 작품들만 보고 즐겨야 하는 가난뱅이 문화소비자로 살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김성열(수성아트피아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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