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오바마 당선, 다문화가정에도 '희망의 불씨'로

"우리에게도 희망이…"

케냐 출신의 흑인 아버지와 캔자스 출신의 백인 어머니.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된 오바마(47)는 전임 대통령들과 달리 중산층과 다문화가정이란 독특한 출신배경을 가진 인물이다. 어린 시절 정체성 혼란과 피부색의 편견을 극복한 그의 이력은 한국의 다문화가정에도 꿈을 심어주는 계기가 될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결혼이주여성과 그 가족, 다문화가정과 관련된 단체·전문가들은 한국에서도 '제2의 오바마'가 탄생하려면 먼저 그들에 대한 뿌리깊은 인종적 편견을 없애야 한다고 했다.

◆경제적 뒷받침 있어야=1999년 결혼을 하면서 한국에 정착한 중국 출신 팽학려(35·여·대구 수성구 상동)씨는 "아이의 재능이 미래 직업을 좌우하겠지만 당장 다문화가정이나 그 2세들이 한국의 교육열을 따라갈 수 있을 지 의문스럽다"고 했다. 8살, 6살 두 아들을 두고 있는 그는 "학원이다 과외다 해서 어릴 적부터 사교육을 받는 아이들에 비해 학교 수업만 받는 우리 아이들은 늘 뒤쳐질 수밖에 없다"며 "경제적 뒷받침을 갖추지 못한 대부분 다문화가정 2세들이 한국 사회의 엘리트로 성장하는데는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김예리(31·여·달서구 신당동)씨는 한국사회에서 제2의 오바마 탄생은 아예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사회는 미국처럼 인종에 대한 개방적 분위기도 아닌데다 설사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혼혈인, 다문화가정 2세라는 굴레로 인해 출세가 막히고 사회적 차별을 받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는 2004년 한국에 시집 온 이후 언어적 장애와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여기에는 외국인 신부에 대한 한국 남성들의 왜곡된 인식도 한몫했다.

김씨는 "한국에서 외국인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식당에서 식탁을 닦고 설거지하는 일 뿐"이라며 "경제적으로 무능해 2세들을 제대로 공부시키지 못하고, 아이들 역시 먹고 살기 힘든 부모들을 보면 함께 좌절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사회적 편견의 벽 넘어야=풍피프응(34·여·베트남·수성구 수성4가)씨는 한국인의 외국인에 대한 편견, 특히 동남아시아인들에 대한 편견을 깨지 않고선 선진사회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사람들은 동남아시아인들을 보면 돈을 받고 팔려왔다고 생각해요. 사람의 됨됨이, 그의 능력은 아랑곳하지도 않아요. 피부가 조금만 검으면 아예 무시합니다."

그녀는 언젠가는 한국도 다문화가정 2세들, 3세들에 대한 편견이 없어지겠지만 당장 한국에서 오바마와 같은 기적이 이뤄지기는 힘들 것이라고 했다. 혈통주의로 똘똘뭉친 한국과 이민자의 나라 미국과는 유색인종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다르다는 것.

대구남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 이윤진 실장은 "무엇보다 어린 시절 방황하던 오바마가 미국사회의 인종 편견을 극복하고 인간 승리를 이뤘다는 점은 한국에서 경제적 사회적 편견을 겪고 있는 다문화가정 2세들에게 작은 희망의 불씨를 던져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국인들의 기울어진 시각과 백인과 흑인, 동남아 등 출신국가에 따른 이중적 잣대는 하루빨리 벗어 던져야할 숙제라고 지적했다.

경북도청 조자근 다문화담당은 "다문화가정 2세들은 한국어와 어머니의 나라 언어를 함께 사용하는 국제적 언어능력과 문화적 다양성을 가져 우리 사회의 귀중한 인적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며 "우리가 다름의 가치와 능력을 제대로 읽어낼 줄 아는 포용력을 갖춘다면 제2의 오바마 탄생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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