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환희의 눈물, 와인]이야기

우리나라 와인 즐겨보세요

"아직 와인에 대해 잘 몰라 쩔쩔매고 있습니다."와인 독에 푹 빠져있는 고재윤 교수는 국내에서 와인소믈리에 선두주자 이면서도 늘 과일향이 그득한 부드러운 와인처럼 겸손하다. 몸에 베인 서비스맨 정신이 바탕한 때문일까. 한국국제소믈리에학회 초대 회장직을 거친 그는 경희대 와인소믈리에컨설던트(1년)과정을 개설, 와인관련 지식의 확산과 함께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을 정도로 와인 분야에서 최고수다. 고 교수는 1997년에 와인에 입문했다. 쉐라톤호텔 근무 당시 독일와인협회 초청으로 독일 와이너리(winery)와 포도밭을 다녀온 것이 계기가 됐다. 와인 입문 뒤 10여년 동안 와인과 함께해온 그는 와인관련 논문만 30편을 썼다. 초창기엔 와인논문 1~2편을 섰다가 거절당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후배들이 연구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놓은 상태"라고 안심한다.

워커힐호텔 20년 근무경력에다 칠레와 아르헨티나를 빼고는 세계 각국의 와이너리를 다 가본 고 교수를 만나 와인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전쟁과 함께 성장한 와인

다른 술이 그렇듯이 와인도 전쟁의 문화와 맥락을 같이한다. 성경책에 와인 이야기가 500여회나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전쟁중 포도넝쿨은 병사들의 말이 들어오지 못하게 했고, 포도주는 군비 마련에 쓰였다. 병사들은 포도주를 마시고 고향'부모형제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과거 로마'그리스시대에 화이트는 귀족, 레드는 노예들이 마시는 술이었으나 18세기를 거치면서 대부분이 레드와인을 마시는 쪽으로 바뀌었다.

호스트(주인)가 먼저 와인을 마시는 관습은 호스트가 적장을 초대해놓고 자신이 먼저 마셔야 적장이 잔 속에 독이 없음을 알고 따라 마신다는데서 유래했다고 설명한다. 우리나라 안동지방 등 양반들의 주법 중에 '주주객반(主酒客飯)'과 다르지 않다. 또 집에 손님이 왔을 때 부인이 호스트가 돼 술잔을 먼저 마시는 것은 악녀의 경우 술잔에 독을 넣어 남편을 살해 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고.

건배를 하는 것은 건배 때 잔속에 독이 있으면 거품이 일어 사고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관습이 요즘의 '레이디 퍼스트(lady first)' 문화를 만들었다.

와인은 계절, 직업, 지위, 취미, 특별한 날에 따라 다르게 선택하는 등 '스토리 있는' 와인을 선택하고, 선물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보졸레 누보'에 대해 언급했다. 보졸레 누보는 프랑스 보졸레 지방에서 나는 와인으로 사이가 좋지 않는 친구가 화해의 방법으로 햇술을 나눠마신 것에 유래됐다.

수년 전 국내에서 빈티지 1840년짜리 와인을 마셔본, 그날의 감동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는 그는 와인에는 아로마와 부케(1차=포도 특유의 향, 2차=발효과정에서 나는 것, 3차=숙성과정에서 나는 것)가 있으며 기본적으로 레드는 과일'오크'바닐라'후추'약한스모그, 화이트는 과일'오크'바닐라'복숭아'레몬 등의 향이 난다고 상식을 알려줬다. 코르크도 와인과 무관하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코르크 길이가 길수록 비싼 와인으로 장기보관이 가능하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코르크라도 병입 후 20~30년이 되면 갈아줘야 한다.

그는 과일로 만든 모든 술을 와인이라 하지만 "포도로 만든 것은 와인, 그 외 과일별로 감으로 빚었으면 감와인, 오미자가 원료라면 오미자와인, 머루로 빚었으면 머루와인 등으로 부르면 된다"고 정의했다.

몸에 좋은 적정량은 하루 2~3잔 정도이며 한꺼번에 다 마시기보다는 조금씩 자주 마셔야 한다고 조언한다.

◆포도나무 수명 80세…50세 넘으면 질 떨어져

포도나무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 80세로, 건강관리 잘한 사람의 수명과 비슷하다.

20세까지는 5m 깊이까지 뿌리를 내려 다양한 미네랄성분을 섭취하면서 세컨드와인을 생산하고, 20~50세에 이르는 30년간은 가장 좋은 포도주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포도나무도 50세가 되면 사람처럼 기력이 떨어지면서 와인의 질도 떨어진다. 와이너리에서는 대개 20년 이하 짜리와 20~50년생을 브랜딩해 와인을 만들고 있다. 가장 좋은 와인은 한 그루에 네 송이씩 달린 포도나무 세 그루에서 한 병을 생산하는 것이란다.

◆대구경북 와인산업도 유망

"서울에서 와인이 활성화한 것은 겨우 지난해부터 입니다. 지방은 아직도 무관심하다고 표현할 정도죠." 그는 프랑스의 경우 보르도 지방에서 와인공부를 한 사람은 오로지 보르도 와인에 대해서만 알고 추천할 뿐 알자스 등 인근 지방의 와인은 전혀 모르는 등으로 해당 지역의 와인만 즐기는 추세라고 강조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도 우리 와인을 애용하고 육성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역설했다. 외국의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 양조용이 아닌 식용포도로 양질의 와인을 만든다는 데 대해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며 지역에서도 농가에서는 양질의 와인을 만들고 업계와 학계에서는 대구경북에 와인문화 보급과 확산을 위해 노력하면 와인산업도 활기를 띨 것으로 내다봤다. 고 교수도 보르고뉴와인대학장 등 프랑스의 와인 전문가들을 초빙, 테마별 강연회를 여는 등으로 지역 와인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와인 선택 기준은 자신과의 궁합

"우리나라에서는 유명인이 마셨다면 값이 얼마이 건 간에 매장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등으로 와인 선택을 하는 데 문제가 있다"면서 와인 선택의 기준은 '자신과의 궁합'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나라에서 와인산업이 발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매장을 하더라도 온갖 종류를 다갖춰야 하는 등 까다로운 국민성 때문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황재성기자 jsgold@msnet.co.kr

사진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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