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식 즙장은 만드는 과정이 편리하며 식이섬유가 풍부하죠. 보리를 쪄서 절구에 찧어 둥글게 뭉친 후 잿불에 구워 새끼줄에 끼워 띄우는데, 이때 잘 구워야지 조금만 소홀히 하면 한쪽 면만 타서 끝 맛이 씁쓸해집니다."
우리나라 팔도의 양반가에서 전해오는 내림음식 111가지 비법과 음식 이야기를 기록한 책 '8도의 반가·명가 내림음식'에서 밀양 박씨 가문의 내림음식 11가지를 재현한 전통음식연구가 박순애(37) 원장은 전통음식연구와 재현에 본격 입문한 지난 7년 동안 하루에 4시간 이상을 자본 적이 없는 강행군을 해 왔다. 인터뷰 당일 오후에도 그는 람사르 총회가 열린 창원에서 20여 가지의 전통 차와 다식, 한국의 떡을 참석자들에게 선보이고 막 도착했다.
"몸은 피곤해도 옛 요리책을 보며 밤새워 전통음식을 재현하노라면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행사 시간에 맞추느라 그는 어젯밤도 꼬박 세웠단다. 박 원장이 이처럼 전통음식에 몰두하게 된 계기는 어려서 음식 만들기에 관심과 소질이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대학시절 떠났던 40일간의 유럽배낭여행 때, 프랑스·이탈리아 등지의 허름한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조리사들이 갖고 있던 자국음식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과 음식에 얽힌 스토리텔링에 큰 문화적 충격(?)을 받았기 때문.
"유럽의 한 요리사가 김치를 먹은 적이 있다는데 발효음식인 그 맛이 너무 인상적이었다는 거예요. 그때 제 뇌리에 '아! 한식도 꽤 괜찮은 음식이구나' 하는 생각이 번쩍 들더군요." 이 후 대학 졸업 후 폐백이바지 음식을 배우던 중 왠지 성이 차지 않던 차에 서울에서 전통음식 재현과 보급에 앞장서던 윤숙자(한국전통음식연구소장) 선생을 찾았다.
"당시 1천여 명이 넘는 수강생이 있었는데 유독 제 눈빛이 살아 있다며 많이 돌봐주셨죠." 제자의 열과 성, 스승의 가르침이 더해지면서 박 원장의 전통요리 재현은 날개를 달게 된다. 일주일에 1,2회 대구와 서울을 오가는 고된 명인반 과정을 거치며 잇단 전통요리재현 책 발간에 참여하게 된다. 그 결과가 홍만선의 '산림경제'를 증보한 1780년 유중림의 '증보산림경제(종합농서로서 사대부의 문화생활과 의식주를 기록한 책)'와 전통 조리책인 음식디미방, 수운잡방, 산가요록에 나오는 음식들을 현대적으로 되살린 '아름다운 한국음식 100선'과 '요록' 등에 공동저자로 오른 것.
"전통음식을 재현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레시피에 나온 내용 중 간장이나 소금의 양 표기를 막연히 '조금', '얼마간', '대강' 등으로 표기돼 제대로 된 맛을 검증할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전통음식을 재현할 경우 현대인의 입맛과는 너무 동떨어져 전 조리과정을 다시 되풀이할 때도 많다.
"눈 오는 밤에 눈을 맞춰가며 굽는 쇠고기 꼬치요리인 설야멱(雪夜覓)의 조리법을 보면 눈 녹은 물인 납설수가 쇠고기의 나쁜 굳기름을 제거하며 육질도 부드럽게 한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눈 대신 고기가 익어가면 급히 꺼내 찬물에 담그기를 세 번 반복한 후 마지막에 들기름을 발라 굽기도 합니다." 말로 들어서 설야멱의 맛을 상상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
대학에서 외교학을 전공했으나 전통음식의 이론적 바탕을 다지기 위해 지난해 대구한의대 한방식품조리과에 편입한 박 원장은 현재 학교 공부와 병행해서 전국 시·군향토자원화사업의 일환으로 실시하고 있는 지역 특산물을 이용한 전통음식 메뉴개발 및 영양사들 교육과 각종 행사에 전통음식을 재현에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달엔 대구 동구 방촌동에 '박순애 전통음식학원 및 한국혼례음식문화연구원'도 열었다.
"한식의 영양학적인 우수성과 맛을 세계화하고 대중화시키는 게 저의 꿈입니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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